주브라질 대사로 근무한 지 2년 반 만인 2005년 가을 귀국해 새 부임지로 나갈 때까지 모교인 연세대에서 국제관계론을 강의했다. 1년쯤 지난 2006년 외교부 측에서 내가 유럽 주요 국가의 공관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음의 준비를 하며 기다리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2007년 2월 그달 말로 퇴직하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58세에 조기퇴직이라니, 청천벽력이었다. 퇴직 소식을 접하고 제일 먼저 나온 말은 “하나님,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였다.
35년 넘게 외교관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강제로 떠밀려 은퇴하게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주브라질 대사 재임 시 미국 본토보다 넓은 영토와 막대한 지하자원을 가진 중남미 최대국 브라질과 기술 및 자본 강국인 한국의 경제·통상 관계 증진을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브라질 지방정부를 부지런히 방문한 결과 양국 교역액이 3배 늘었고 투자도 급증했다. 차관보급을 역임하면 유럽 주요국 공관장으로 나가는 관례도 있었다. 성과와 관례에 따른 공관장 내정 소식을 믿었기에 더 낙심할 수밖에 없었다. 외교관 선배들은 어떻게 아무 이유 없이 강제로 퇴직시키냐며 필요 경비를 댈 테니 법적 소송을 하라고까지 했다. 말씀만이라도 고마웠다.
나의 외교부 강제 퇴직 소식을 들은 김하중 당시 주중국 대사가 메일을 보내왔다. 기도 중에 받은 말씀이라며 “너는 사람을 사랑하라. 너보다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그리하면 네가 거기서 나를 찾을 것이다”란 메시지를 전해주셨다. 참으로 감사했다.
하용조 목사님은 우리 부부를 담임목사실로 불러 시편 37편 말씀을 함께 읽어보라고 말씀하셨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로 시작하는 말씀은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로 이어졌다. ‘아 이 모든 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구나’라고 깨달으며 곧바로 금식기도원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기도원에 도착해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자마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원망과 억울함으로 온종일 울었다. 물 한 모금 넘길 수 없었고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나오는 기도는 “하나님, 이제부터 뭘 하며 먹고 살지요”였다.
내친김에 사흘을 금식하며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달라고 기도했다. 금식 마지막 날 새벽기도 중에 하나님이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는 말씀을 툭 던지듯이 주셨다. 그 순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하나님은 내게 “너는 그동안 누구의 유익을 구하며 살았더냐”고 묻고 계셨다. 직설적 질문이니 에둘러 답할 수 없었다. “주님, 그동안 저와 제 가족과 제 나라만을 위해 살았습니다”란 고백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이제부터는 너 말고 남, 네 가족 말고 남의 가족, 네 나라 말고 남의 나라를 위해 살아라”는 말씀이 들려왔다.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