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동산 실정에 대한 문 대통령의 뒤늦은 자성

입력 2021-03-30 04:01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해 임대차법 시행으로 임대료 인상 폭이 5%로 제한되기 직전에 본인 소유 아파트의 전세 보증금을 14.1% 올렸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자 29일 전격 경질됐다. 관련 보도가 나온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다. 부동산 실정으로 심각해진 민심 이반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 근절 대책을 막 발표하려던 때 정책실장 문제가 터졌기 때문에 즉각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김 실장이 임대차법 시행 이틀 전에 전세 보증금을 대폭 올려 받는 계약을 한 것은 불법이 아니며, 대다수 평범한 임대인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손해를 안 보려고 김 실장과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 결정에 깊이 관여하는 정책실장이 국민은 임대료를 5% 넘게 못 올리게 해놓고 본인은 미리 큰 폭으로 올린 것이어서 문제가 됐다. 고위 공직자가 취할 행동이 아니었다. 임대차법은 전셋값 폭등을 불렀다. 전세대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김 실장은 방송에서 국민들을 향해 “불편하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었다. 김 실장의 자기 잇속 챙기기가 이번에 드러난 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활활 불타던 민심의 분노에 또 한 번 기름을 끼얹은 꼴이다. 경질을 미적거렸으면 상황이 더 나빠졌을 텐데 속전속결로 처리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주재하며 부동산 적폐 청산 의지를 거듭 밝혔다. 문 대통령은 생중계된 모두발언에서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매도 매우 아프다”며 관계 장관과 사정기관장들에게 야단맞을 건 맞으면서 국민 분노를 부동산 부패 청산의 동력으로 삼아 달라고 주문했다. 공직자 투기에 대한 엄정한 처리, 부당이익의 철저한 환수, 모든 공직자 재산등록 실시 등도 강조했다. 코로나 방역과 경제 성과에 대한 자랑은 거의 없었고, 대신 뼈아픈 자성의 말이 가득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을 우리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 있어 평가를 반전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삼겠다”고 했다. 절박함이 느껴지지만 반전시킬 수 있는 시간은 부족하기만 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장기 무주택자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한 대출 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대출 규제 조치가 내 집 마련의 희망을 꺾고 서민·실수요자의 주거 사다리 형성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를 듣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외쳐온 목소리를 왜 이제야 들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믿고 따랐다가 손해 봤다고 느끼고 상대적 박탈감을 겪게 된 국민들을 향해 사과했다. 그동안 정부·여당의 오만과 무감각이 국민들에게 상처를 줬다고도 했다. 지지율 추락에 정신이 번쩍 든 여당이 납작 엎드려 읍소하는 모습이다. 뒤늦은 반성 모드로 과연 민심을 달랠 수 있을까. 만시지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