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이 수여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0’ 최종 수상자로 이슬기(48) 작가가 선정됐다. 그는 김민애, 정윤석, 정희승 등 후보에 오른 4명 가운데 낙점됐다. 국립 기관이 주관하는 이 상은 ‘과거 급제’에 비유될 만큼 무게감이 있다. 이 작가는 문짝, 단청, 누비이불 등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쓰는 물건의 조형성에 주목했고, 이를 장인들과 협업해 현장에 설치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그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세이던 1992년 일명 보자르라 불리는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29년째 프랑스 파리에서 살고 있으니 외국에서 살아온 기간이 훨씬 더 길다. 작가를 지난 28일 국제전화로 인터뷰했다.
-프랑스에서 미술대학 격인 보자르를 다녔는데.
“1학년 때 모자이크 반에 1년간 있었다. 모자이크는 유럽에서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세 성당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등 모자이크는 유럽에서도 구닥다리로 취급한다. 하지만 나는 대상을 픽셀화하는 그 현대적 원리가 재밌었다.”
(작가는 3학년 때부터는 설치·퍼포먼스·개념미술을 배웠다. 이번에 수상한 작업은 공예 장인 및 기술자들과 협업한 일종의 개념미술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일종의 기획자인 셈이다.)
-누비이불, 문짝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사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5년 전 시작한 이불 프로젝트가 그 시작이다. 프랑스에 살면서도 전시 등을 이유로 거의 매년 한국을 다녀간다. 어느 해, 1980년대 유행했던 누비이불이 아주 한국적이라 생각했다. 프랑스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구하려고 돌아다녔는데,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계기가 돼 누비이불 장인들과 협업한 작업으로 발전시켰다. 이불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상용품인가. 매일 덮고 자고, 이불 속에서 잠의 세계로 들어갔다가 잠의 세계에서 빠져나온다. 그 자체가 하나의 경계다. 가족 등 공동체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이번 전시의 소재는 문짝이다.
“문짝에 대한 관심은 스위스와 모로코를 거쳐 한국으로 넘어온 것이다. 스위스 알프스 산맥마을엔 창문에 덧대는 덧문이 있는데 그 단순함에 먼저 매료됐다. 또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문은 화려하고 복잡하기 그지없는데, 창호지 없이도 햇빛을 걸러내는 기능을 하는데 놀랐다. 그게 자연스레 한국 문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문살 문양은 우물 정(井) 자 등 한자에서 딴 것도 있고, 그 안에 우주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설치 작품 이름이 ‘동동다리거리’이다.
“여인이 부르는 야한 노래를 문살 안에 담는 프로젝트를 처음 구상했다. 한국 전통 민요에서 그런 노래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가상의 고려가요 ‘동동다리거리’를 설정하고, 그 장단을 단청 안료로 칠한 문살무늬에 입혔다. 무형문화재 장인들과 협업했는데, 그분들은 제가 구상한 문살이 전통과 다르다고 놀리셨다. 말하자면, 미술가로서 재해석한 문살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여자들이 부르는 야한 노래인가.
“야한 노래라 하면 남자들이 부르는 것만 생각한다. 프랑스에는 여자들이 부르는 야한 노래가 상당히 있다. 훨씬 은유적이고 추상적이다.”
-색상이 단청 같지 않고 훨씬 경쾌하다.
“4개의 벽 하나하나를 뉘앙스가 다른 연한 회색으로 칠해 단청을 받쳐주는 효과를 내려고 했다. 그 묘한 밑 색이 달빛을 연상시켰으면 싶었다. 또 문짝 형태는 달의 모습을 상상했다. 높이 떠오른 달, 점점 내려가는 달, 임신한 여자 같은 달 등…. 색은 좀 촌스럽게 비칠 수 있지만 관람객들이 씩 웃으면서 편하게 관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예술 작품을 두고 토론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될 수 있다. 예술은 많은 사람이 모여 토론하게 하는 장치라 생각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