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료원 시도별 최소 1곳씩, 2~3개 보험자 병원 확충 필요

입력 2021-03-29 19:47
중진료권 중 27곳은 공공병원 없어… 정부 공공의료 확충안 회의론도
일산병원, 지역 거점의료 기능 선도… 보험자병원 확충해 선의 경쟁 유도를

지난 2월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서 코로나19에 확진된 나이지리아 산모가 출산한 신생아를 간호사가 살펴보고 있다. 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인 일산병원은 지금까지 7명의 코로나19 감염 산모의 출산에 성공했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제공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공공의료 확충의 필요성과 시급성이 부각됐다. K-방역의 성공 뒤에는 공공의료가 상당한 역할을 했지만 한계와 문제점 또한 드러났기 때문이다. 신종 감염병의 출현 주기가 점차 짧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같은 국가적 재난 피해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턱없이 부족한 공공의료의 확충을 더 이상 늦출 수 없게 됐다. 정부와 일부 지방자치단체들도 공공의료기관 설립과 인수 등을 검토·추진하고 있으나 재정 여건 등으로 시급성에 비해 당장의 확충이 부담되는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같은 보험자 직영 병원의 추가 설립을 통한 공공의료체계 강화 방안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방의료원 중심 공공의료 강화?

국내 공공의료 인프라는 매우 열악하다. 1977년 의료보험 도입 전까지는 정부 주도로 공공의료를 확충했으나 도입 이후 급증하는 의료수요를 정부 지원과 차관 알선을 통해 민간 의료기관 중심으로 공급했기 때문이다.

2019년 말 기준 전국 공공의료기관은 221개로 전체 의료기관(4034개)의 5.5%에 그친다. 공공병원 병상 수는 전체의 9.6%(6만1779개)에 불과하다. 지방의료원을 포함해 일반 진료가 가능한 기관은 63개(28.5%)뿐이다. 17개 시·도 가운데 광주 대전 울산 세종은 지방의료원이 없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공공의료 대응을 위해선 단기적으론 17개 시·도별 최소 1개의 지방의료원이 기본적으로 설립돼야 하고 나아가 70개 중진료권(인구 수, 이동시간, 의료 이용률 등 기준 시·군·구를 70개 권역으로 구분) 가운데 공공병원이 없는 27개 지역의 확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공공의료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400병상 규모 지방의료원 20개를 확충(9개 신축, 11개 증축)해 2025년까지 5000병상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지방의료원 중심의 공공의료 강화 방안에 반신반의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장은 29일 “200~300병상 수준의 지방의료원 상당수가 인력 등 인프라가 열악하고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고 인식돼 있다. 특히 증축의 경우 업그레이드한다고 얼마나 개선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보험자 직영 병원의 역할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은 지난해 11월 ‘공공의료 확충 필요성과 전략’ 보고서에서 공공의료기관의 역할로 ①표준 진료 및 모델병원, ②지역 거점 공공의료기관, ③건강증진 병원, ④전염병 및 재난 대응 병원, ⑤정책 집행 수단 및 테스트 베드(Test-bed·시범기관) 등 5가지를 제안했다. 공공의료기관은 표준 의료 서비스 모델을 제시하고 수가(의료 서비스 대가로 병원에 주는 보상) 조절을 위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수표교(水標橋)’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건강보험 일산병원은 국내 유일 보험자 직영 병원으로 2000년 3월 개원 후 21년간 이 같은 역할을 해 왔다. 과잉·과소 진료가 아닌 환자에게 적합한 표준 진료를 제공하고 원가 분석 정보를 활용해 적정 수가 산출에 힘써 온 것.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전국민건강보험체계에선 환자가 낸 돈 만큼 제대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았는지, 의료기관에는 적정한 수가가 지불됐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보험자병원이 아닌 민간병원에선 충분한 자료를 얻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일산병원은 또 표준 진료 지침 운영으로 비슷한 규모의 다른 병원 평균 진료비의 75%수준으로 받아 국민 의료비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다. 또 신포괄지불제도(2009년 4월), 간호간병통합서비스(2010년 5월), 가정호스피스(2016년 2월) 시범사업 등 정부 각종 정책의 테스트 베드 역할을 수행해 왔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보호자가 필요 없는 간호사 간병 서비스의 경우 일반 병동의 93%(509병상)에서 실시 중”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소아발달지연클리닉, 치매예방센터, 알코올질환센터 등 민간병원이 기피하거나 취약계층 진료를 선도해 지역 거점 의료기관으로서 기능도 다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턴 집중치료실 등 필수의료 병상을 뺀 일반 병상을 코로나19 치료 병상으로 과감히 전환하는 등 공공의료기관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감염병 대응을 하고 있다.

아울러 일산병원은 세브란스병원과의 인력 협력을 통해 대학병원 못지 않은 의료진과 시설·장비를 갖추고 있다. 한 관계자는 “코로나19에 걸린 고위험 산모의 출산에 7차례 성공했다. 지방의료원에선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휠체어에 앉은 환자가 보호자가 필요 없는 간호사 간병 서비스를 받는 모습.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제공

“복수의 보험자병원 필요”

이런 이유로 정관계 일각에선 오래 전부터 제2, 3의 보험자 병원 설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어 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실 관계자는 “보험자병원은 병원으로서 기본 역할 뿐 아니라 민간병원이 기피하는 진료, 감염병 대응 등 현행 민간의료 중심의 보건 의료체계를 개선하고 건강보험을 정상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 등 감염병 시대에 복수의 보험자병원 확충은 필수 불가결하다”고 강조했다.

복수의 보험자 직영 병원이 있으면 적정 수가 산정을 위한 원가 산출에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보험자병원 자료가 정확성을 판단하고 패널 병원이 갖고 있는 각종 문제 자료를 유추·보정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한다는 것. 일부 패널 병원의 경우 불리한 자료는 감추고 유리한 자료를 과장하는 등 방식으로 오염된 자료를 제출하는 사례가 있어 원가, 수가 산정에 그대로 적용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임준 교수는 “합리적인 수가 산정을 위해선 샘플 병원들이 필요한데, 여러 개의 보험자병원 자료가 확보되면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임 교수팀은 2018~2019년 ‘원가 조사체계 구축을 위한 보험자 직영 기관 확충 방안 마련’ 연구용역을 통해 보험자병원 추가(2~3개) 확보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신축 및 인수 등을 통해 1안으로 상급종합병원 1개, 2안으로 비수도권(부산 또는 울산) 500병상·300병상 이상 각 1개, 수도권 300병상 이상 1개의 확충을 제시했다.

건강보험공단도 그간 보험자병원 추가 건립의 타당성 연구를 몇 차례 진행해 왔다. 해외 사례도 참조할 수 있다. 일본 전국사회보험연합회는 산하에 51개 직영 병원을 운영 중이다. 독일 상해보험조합이 소유·운영하는 보험자병원도 8곳이나 된다.

안기종 대표는 “일산병원 같은 중상 규모 보험자병원이 전국 권역별로 5개 정도 세워지면 지역 환자들은 저렴하면서 수준 높은 의료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보험자병원 추가 설립과 지방의료원 확충으로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면 공공의료의 질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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