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순항미사일에 이어 탄도미사일까지 발사하면서 미국 대외정책에서 차지하는 북한의 우선순위와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여기에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개발 의지도 분명히 하는 등 고강도 추가 도발 가능성도 시사했다. 북·미 양측의 이런 입장으로 그동안 북한의 비핵화 의지 및 대화 필요성을 거듭 강조해 온 우리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토 막바지에 들어간 미 대북정책이 대화 중심으로 수립되도록 우리 정부가 설득하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 25일(현지시간)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당면한 외교정책 1순위가 북한이라는 점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것을 놓고 외국 언론들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한 문제가 외교정책 과제의 최우선 순위에 올랐다”고 진단했다. 미 행정부 출범 초기 도발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우선순위에 끌어올리는 북한의 고전적 수법이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는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함께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전문가패널이 이번 사안을 조사하도록 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29일 화상으로 주재하는 안보리 회의와 유럽 5개국이 30일 소집을 요구한 회의에서도 잇달아 논의될 전망이다. 단거리미사일에는 묵인하던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와 달리 즉각 규탄한 바이든 행정부의 스탠스가 국제사회를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진단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중국·러시아의 비협조적인 제재 이행을 문제삼는 목소리와 대북 제재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속도를 늦춘다는 견해가 제기되는 등 제재 강화를 요구하는 의견이 힘을 얻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 입장에선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를 설득해야 할 허들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리병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지난 27일 담화를 통해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미 본토에서 제압할 수 있는 당당한 자위적 권리를 가져야 한다”면서 ICBM과 SLBM 개발 및 시험발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북한이 도발 수위를 계속 높이면 바이든 행정부가 강경노선을 강화하게 되고 그만큼 북·미 대화 재개가 지연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미국은 이번 주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를 열고 대북정책 검토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내달 하순 3국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여는 방안도 조율되고 있다고 일본 교도통신은 전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8일 “핵·미사일 관련 전략전술무기는 일반국가의 국방력 강화를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북한이 ‘강대강, 선대선’ 원칙을 실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미국이 대화 중심의 대북정책을 내놓도록 우리 정부가 미국과 철저히 조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영선 손재호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