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혁(사진) 주미대사가 한인 여성 4명이 숨진 애틀랜타 총격 사건 현장을 단 한 차례도 방문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한인 희생자 4명 중 3명의 장례식은 이미 치러졌지만 이 대사는 누구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애틀랜타를 넘어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미 전역으로 확산되는 희생자 추모 행사나 아시아계 혐오 규탄 집회에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특히 이번 애틀랜타 총격 사건은 아시아계를 표적으로 삼은 증오범죄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을 대표해 미국에 나와 있는 주미대사가 안이하게 대처한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총격 사건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발생했다. 이 대사는 사건 발생 후 11일이 지난 27일 현재까지 한인 유가족을 직접 만나 위로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주미대사관은 “애틀랜타 총격 사건은 주미대사관이 아니라 애틀랜타 총영사관이 전적으로 책임을 맡아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25일 워싱턴 인근에서 있었던 한인 희생자의 장례식에는 워싱턴 총영사가 대신 참석했으며, 이 대사 명의의 조화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주미대사관은 이어 “사건 발생 이틀 뒤인 지난 18일 이 대사가 ‘주미대사관은 최근 증가하고 있는 아시아계 겨냥 혐오범죄를 강력히 규탄하며, 각종 혐오범죄로부터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내놓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주미대사관이 위치한 워싱턴 인근에서 열린 한인 희생자 장례식에도 이 대사가 직접 참석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한 교민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도 애틀랜타를 방문해 아시아계를 표적으로 한 증오범죄를 규탄했다”면서 “이 대사는 도대체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쁘기에 애틀랜타를 한 번도 안 오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총격 사건 사흘 뒤인 지난 19일 애틀랜타를 급히 찾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인 등 아시아계 인사들을 위로하면서 “우리는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틀랜타 총기 참사에 대한 이 대사의 대응은 2018년 10월 반유대주의 총격범에 의해 11명이 숨진 피츠버그 유대교 회당 총기난사 사건 당시 론 더머 주미 이스라엘 대사의 모습과도 비교된다. 더머 당시 주미대사는 피츠버그에 머물면서 사건 수습에 주력했다. 피해 현장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을 안내했던 인물도 더머 대사였다. 더머 대사는 피츠버그에서 열렸던 희생자 추모 행사에도 참석했다.
반면 이 대사는 사건 이후 애틀랜타를 한 차례도 찾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애틀랜타를 방문했을 때도 현장에 없었다.
이번 총격 사건으로 숨진 한인 중 3명은 미국 국적을 취득했고, 1명은 한국 국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인단체 관계자는 “한국 정부는 미국 국적을 취득한 한인들도 한국을 위해 대미 외교에 힘써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면서 “도움을 부탁할 땐 국적을 따지지 않고, 조문할 땐 한국 국적이냐 미국 국적이냐를 따지자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다만 김윤철 애틀랜타 한인회장은 “애틀랜타 총영사관이 사건 수습과 장례식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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