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혈액 이용 맞춤형 카티 치료제
단 한번의 투여로 완치 효과 기대
죽음 앞뒀던 美소녀 9년째 건강
국내 200명 환자 초고가 엄두 못내
청와대 게시판엔 신속 급여화 촉구
단 한번의 투여로 완치 효과 기대
죽음 앞뒀던 美소녀 9년째 건강
국내 200명 환자 초고가 엄두 못내
청와대 게시판엔 신속 급여화 촉구
올해 13살인 A군은 7년째 병마와 싸우고 있다. 2014년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을 진단받고 2년 6개월간 표준 항암치료를 받았으나 재발했다. 2년 가까이 항암치료를 받는 도중 또 재발해 2년 전 조혈모세포(골수) 이식까지 받았으나 지난해 3월 세 번째 재발이라는 암담한 상황에 처했다.
오랜 치료로 독한 항암제를 다시 쓰기는 어려웠고 조혈모세포 재이식도 효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1인 맞춤형 항암제 ‘카티(CAR-T) 치료제’였다. 주치의도 유일한 희망이라고 했다.
‘킴리아’라는 제품이 4년 전 처음 등장해 30개국에서 6개월 시한부 삶을 사는 말기 혈액암 환자들에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아 애를 태웠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A군 부모는 먼저 보급된 중국에 갈 계획까지 세웠으나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그 사이 아이는 재발을 거듭하며 상태가 점점 나빠졌다.
이달 초 A군 가족이 그토록 바라던 희소식이 전해졌다. 킴리아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국내 시판 승인을 받은 것. 하지만 문제는 비싼 약값이다. 이 치료제는 평생 한 번 맞는 주사약이지만 제조 과정에서의 부대 비용 등을 합쳐 수억원을 내야 쓸 수 있다. 미국에선 5억원, 일본에선 3억5000만원으로 약값이 책정됐다. 다만 일본은 허가와 동시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 본인 부담금이 몇백만원 수준으로 줄었다. 국내에서도 신속한 건보 급여화만이 이 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버거운 짐을 덜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A군 부모는 인터넷 글에서 “평범한 가정에서 수억원을 마련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초고가 약의 건강보험 등재가 우선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청와대 게시판에도 카티 치료제의 신속 급여화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이 최근 3건 올라왔다. 3년 전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을 진단받은 동생(23)의 형이라고 밝힌 한 청원인은 지난 9일 올린 글에서 “작년 3월에(동생의 병이) 재발해 백혈구 수치가 급상승했다. 혈액 내 암세포가 70% 이상 남았고 더 이상 쓸 항암제도 없는 상황”이라며 “킴리아의 건보 적용이 조속히 이뤄져 백혈병 등 암 환자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희망을 좇을 수 있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글로벌제약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킴리아는 몸 속 면역세포인 T세포를 사용해 암을 치료하는 항암제다. 기존 항암제와는 제조 방식과 작동 메커니즘이 다르다. 환자의 혈액에서 채취한 T세포에 암세포를 인지하는 유전자(CAR)를 발현시키고 이를 배양해 환자 몸에 다시 투입함으로써 암세포를 파괴토록 하는 원리다. 세포와 유전자, 면역 치료제의 특성을 모두 갖춘 항암제인 셈이다.
일반 항암제가 모든 환자들에게 보편적으로 투여되는 것과 달리 환자 자신의 혈액에서 T세포 채취·동결→CAR유전자 발현(한국 환자의 경우 미국 현지로 세포를 보내 제조)→세포 배양→품질 관리→환자 재주입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개인 맞춤형으로 만들어진다. 전체 과정에 대개 3~4주 걸린다.
주목할 점은 평생 ‘단 한 번의 투여, 즉 원샷(one shot)’으로 완치에 가까운 치료 효과와 장기 생존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기존 치료제가 더 이상 안 듣거나 여러 번 재발한 혈액암 환자들이 최후에 기댈 수 있는 ‘기적의 항암제’로 불린다.
이런 배경에는 죽음을 앞뒀던 한 미국 소녀의 기적 같은 경험이 전 세계적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5살 때 급성림프구성백혈병에 걸려 대부분의 치료에 실패했던 에밀리 화이트헤드는 2012년 4월 킴리아 임상시험에 참여한 뒤 두 달 만에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지는 완전관해 판정을 받았다. 에밀리는 9년째 재발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7년 8월 킴리아를 세계 최초의 ‘카티 치료제’로 승인했다. 한국 식약처는 지난 5일 첨단바이오의약품 1호로 허가했다. 적용 대상은 소아를 포함해 만 25세 미만 B세포 급성림프구성백혈병(ALL)과 성인 미만성 거대B세포 림프종(DLBCL) 환자들이다.
ALL은 림프구계 백혈구가 악성 세포로 변해 골수에서 증식하고 혈액으로 퍼져 간, 비장, 뇌, 척수 등을 침범하는 병이다. 소아 백혈병의 80%, 청소년 백혈병의 56%를 차지한다. 대부분 표준 항암제로 치료되나 반응이 없고 재발하거나 조혈모세포이식 등 2차 치료에도 불응하는 일부 환자는 6개월 정도 밖에 살지 못한다.
DLBCL은 우리 몸의 면역 기능을 담당하는 림프 조직세포들이 악성으로 바뀌어 발병한다. 진행이 빠른 공격형 혈액암이다. 치료하지 않으면 수 개월 안에 목숨을 잃는다. 표준 항암치료를 통해 80~90%는 부분적으로 반응을 보이지만 10~15%는 내성이 생긴다. 환자의 20~35%는 재발을 경험한다. 이들 재발·불응성 환자들은 더 이상 정립된 치료법이 없어 평균 생존 기간이 6개월에 불과하다.
그런데 미국, 유럽 등에서 진행된 DLBCL환자 대상 임상연구에서 킴리아 투여 3개월 만에 53%가 반응했고 39.1%는 완전관해에 도달했다. 투여 2년 시점에 병의 무진행 생존율은 33%였다. 소아·청소년 ALL 환자 대상 임상연구에선 더 드라마틱한 결과가 나왔다. 환자의 82%가 투여 3개월 안에 완전관해됐고 6개월 시점에 무사건 생존율은 73%였다.
강성한 서울아산병원 소아혈액종양내과 교수는 29일 “소아 백혈병의 치료율이 10~20%에 그치는데, 80%가 완치 수준에 도달할 만큼 혁신적인 약이고 환자들에겐 한 줄기 빛”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는 ALL 50명, DLBCL 150명 등 연간 약 200명의 환자가 치료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르면 오는 5월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등에서 첫 치료 환자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회장은 “생명과 직결되는 병이고 급여화가 절실한 약이다. 통상적 프로세스 보다 더 빠른 급여화 심사가 필요하다”면서 “다만 ‘원샷 치료제’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건보 재정에 적지않은 부담이 되는 만큼, 초고가 약의 급여화와 환자 지원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과 함께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해야 하는 정부로선 고심이 깊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And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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