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존중은 하나님 뜻… 낙태 보완 입법 신속히 추진해야

입력 2021-03-30 03:06
지난해 9월 세종 국무조정실 앞에서 열린 낙태 반대 집회에서 천주교 성직자 등이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이날 참석자들은 ‘태아도 사람이다. 생명권을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낙태할 경우 임신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20년 연말까지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국회의 의무 방기로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낙태죄 규정이 효력을 잃었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대법원은 낙태수술 중 태어난 신생아를 고의로 숨지게 한 의사에게 중형을 확정하면서 낙태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아이가 산 채로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자 의사가 진료하지 않은 채 아이를 물이 담긴 양동이에 넣어 사망케 한 사건이었다.

대법원은 이 사안에 대해 살인과 사체손괴 등은 인정하나 낙태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낙태죄가 무효로 됐기 때문이다. 아이를 죽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낙태수술 중에 실수로(?) 아이가 살아서 나온 경우는 살인죄의 중형으로 처벌했다. 반면 배 속에서 죽이면 처벌하지 않았다.

낙태죄가 폐지됨에 따라 약물에 의한 여성의 간편한 임신중절이 자연스럽게 용인되고 급속히 보편화할 것이 예상된다. 그간 낙태가 불법이었으므로 임신중절약 복용 또한 불법이었다. 따라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품목 허가를 받은 임신중절약도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보도에 의하면, 현대약품이 먹는 임신중절약 ‘미프진’을 국내에 들여오기로 했다. 임신중절약 도입을 기다려 온 급진적 여성단체 회원들이 응원의 의미로 현대약품 주식 매수에 나서 주가 상승을 가져왔다고 한다.

여성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임신중절약이 도입되면 어떻게 될까. 여태까지는 낙태를 꺼리거나 형사처벌의 위험을 피해 고비용으로 외국에까지 가서 낙태하던 불편함과 번거로움이 말끔히 해소될 것이다. 태아의 생명은 손쉽게 말끔히 제거될 것이다. 과연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가 진정 바라고 지향하고자 하는 모습인가.

헌법은 기본권을 보장한다. 인권을 보호하려는 가치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고귀함을 전제로 한다. 만일 생명의 존귀함과 그를 확인하는 기본적 인권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인류 문명 발전의 동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난 세기 우리 사회가 그토록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싸우며 노력해온 역사 발전의 모티브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낙태를 형사법으로 규율하는 것이 임신 여성을 얽어매는 족쇄요 또 다른 인권 침해라는 점을 부분적으로 이해하더라도 생명을 박탈하거나 침해에 이르는 것이라면 여성 인권을 더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삶의 어려운 정황, 태어날 태아의 장래 보호라는 사유도 생명의 고귀함에 비교할 가치는 아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여성이 홀로 남겨질 아이가 불우해질까 봐 그와 함께 투신하는 행위를 도저히 긍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의 모든 사회적·국가적 활동, 아니 인간의 활동과 인류의 노력은 결국 생명을 살리고 더 풍성하게 하는 데 이바지하려는 것이다.

생명을 살리며 충만하게 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창조질서다. 이 생명에는 영적 생명뿐 아니라 육체적 생명이 포함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태아는 독립된 생명이다. 임신 여성의 몸의 일부분이 아니다. 여성이 처분권을 갖지 못한다. 여성의 삶의 곤경을 피하고자 낙태를 허용하겠다는 논리는 이해하기 어려우며, 생명 경시에 다름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가 무엇이냐, 또 국가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법률의 취지나 정신으로 표현된다. 그간 낙태를 처벌하는 법이 그다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실상 사문화된 것으로 운영됐다고 해도 이를 법제화하는지는 그 나라의 사회문화가 지향하는 가치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과연 생명을 중시하는가. 이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기본적 입장이며 의지의 발현이고 입법권자나 헌법개정 권력이 함부로 변경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소위 헌법상의 근본규범이다.

지난해 보완입법 과정에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일부 여성단체는 정부의 주수 제한 입법예고안의 완전 철회를 요구했다. 낙태죄 완전 폐지를 주장하며 낙태죄 마침표를 찍을 것을 줄기차게 제기해왔다.

이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몰라도 일부 야당 의원들의 대안 입법이 발의됐음에도 국회는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의도적으로 법 개정 시한을 넘겼는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생명 존중의 이념을 국회가 포기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함부로 대하고 처분할 수 있는 비문명적인 사회로 전락하지 않도록 국회는 시급히 보완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이흥락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대표)

[낙태죄 개정이 국민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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