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아주 작은 성공이라도

입력 2021-03-29 04:06

어느 날 저녁 한 후배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절친 디자이너와 함께 브랜드를 창업한 후배인데 연락한 내용이 그리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나름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SNS를 통해 본 모습으로는 코로나19 상황에도 위축되지 않고 멋있게 성장하는 브랜드였는데 그간 숨은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한동안 공공기관이 엄선한, 유망하지만 아직은 지원이 필요한 패션 디자이너들을 만나 고충을 듣고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일을 해왔다. 맡은 역할이 그렇다 보니 화려한 모습 뒤의 무거운 짐이 내게도 일부 전해졌다. 상당한 재능과 열정을 갖고도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하며 마주하는 끝없는 어려움에 같이 한숨이 났고, 함께 고민했던 브랜드가 폐업이라도 하면 한동안 마음이 서늘했다. 십자가를 조금씩 나눠 진 느낌이다.

창업 기업은 성장하면서 ‘죽음의 계곡’을 세 번 지난다고 한다. 이런 어려움을 지나려면 힘이 필요하다. 강한 성취욕일 수도, 인내심이나 책임감일 수도 있다. 재작년쯤 간만에 밝은 얼굴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전에는 많은 기대와 지원을 받으면서도 매출이 시원하게 늘지 않아 압박을 느끼던 얼굴이었는데, 이런 인상이었나 싶을 정도의 밝은 모습에 놀랐었다. 좋은 품질의 다소 비싼 옷만 내놨을 땐 매출이 제자리걸음이다가 가격을 많이 낮춘 제품을 만들었더니 반응이 좋다고 했다. 바라던 방향이 아니고 큰 이익이 되는 건 아니지만 몇 백, 몇 천장씩 주문받아 생산하면서 디자이너도 직원도 함께 생기를 얻은 것 같았다.

팍팍한 환경에 의욕을 잃고 주저앉은 젊은이들이 많다는 소식이 들린다. 입시도 어려웠고 취업은 더 어려우니, 그럴 만도 하겠다. 그럴 때 아주 작은 일에라도 성공해보는 연습이 힘을 줄 것 같다. 취미 활동에서 성취감을 맛보거나, 내가 만든 무엇을 단 몇 개라도 팔아보거나. 나의 효용을 자꾸 경험하다 보면 무엇이든 다시 열심히 해보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윤소정 패션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