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들어온 새엄마는 우리 남매들에게 심한 욕설과 매를 들며 구박했다. 10살 어린 나이에 다독여 줄 엄마가 없어 서러웠지만 엉덩이를 토닥이며 ‘아고 착하다, 우리 강아지!’ 하는 할머니와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셋째 언니가 큰 위로가 됐다. 그런데 할머니는 평생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시고, 셋째 언니는 결혼하더니 이혼했다. 어린 딸과 힘들게 사는 언니를 위해 대학진학도 포기하고 함께 살며 한 푼을 아끼며 밤낮으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지쳐가며 왜 돈을 버는지 혼란스러웠고, 당연하게 돈을 쓰는 언니에게 배신감이 들어 먹지 못하는 소주를 병째 마시고 내가 돈 버는 기계냐고 울부짖으며 대들었다. 세상쾌락에도 빠져 보았지만 결국 깊은 공허와 외로움에 방문을 닫고 세상과 단절했다. 우울증으로 약물, 상담, 최면치료에 몇 차례 굿도 했지만 우울증은 점점 내 심장을 조였다. 치료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심리학 공부를 하고, 수시로 3천배를 하고 명상수련으로 미국까지 다녀오며 신비한 체험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2년간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도 상태는 점점 악화돼 침대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게 되자 극단적 선택을 결심했다.
그때 지인을 통해 인생을 바꿔줄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내게 ‘사람으로 태어난 예수님은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셨어!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야’ 했다. ‘역사? 신화 아닌가?’ 그리고 ‘믿는 것과 아는 것은 달라. 마귀도 예수님을 알아’ 하는 언니에게 ‘믿는 게 아는 거고, 아는 게 믿는 거지 뭐가 달라’ 하며 반발했다. 그런데 이혼에, 계약직에, 돈도 없이 나보다 훨씬 힘든 상황인데도 변함없이 기쁘게 사는 언니의 모습을 보며 나도 하나님께 눈물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복음서에서 분명히 죽었는데 눈앞에 나타나 못 자국 난 손과 발을 보여주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모든 생각이 멈췄다. ‘살과 뼈가 있는 몸으로 부활했다고? 예수님이 진짜 사람이었어?’ 너무 큰 충격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과 하나님이라는 두 단어가 예수님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순간 견고했던 내 모든 가치관이 와르르 무너졌다.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구나. 예수님이 진짜 부활하셔서 살아계시는구나. 이런 분 앞에서 내가 뭘 하고 있었지?’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생명 걸고 나를 살리신 분을 죽인,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바로 나였다. “하나님 아버지! 용서해주세요. 저는 죄인입니다. 저의 주인이 되어 주세요.” 나는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했다.
예수님이 주인 되시니 행복과 감사가 흘러 넘쳤다. 우울증으로 학교도 그만두려 했는데 하나님께선 복음으로 우울증이 완치된 나의 사례로 졸업논문을 쓰게 해 주셨다. 교수님은 기독교색이 짙어 통과가 어렵다고 했지만 척박한 일본 땅에 꼭 전해야만 했기에 눈물로 기도하며 준비했는데 큰 호평을 받으며 논문이 통과됐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세상을 좇으며 살지 않는다. 전에는 아빠가 너무 미워서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조카들은 내가 전화만 해도 무서워서 벌벌 떨며 울 정도로 아이들을 싫어했는데 지금은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며 매일 기쁨 가운데 생활하고 있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 받을 그날을 사모하며 오늘도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
윤소연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