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한복을 입은 아버지는 삼대독자로 한학을 공부하셨다. 조상을 잘 섬겨야 한다며 묘지마다 비석을 세웠고, 어머니는 늘 점집을 드나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교회를 무척 싫어했는데 꼭 예수님을 믿으라는 이웃집 집사님의 전도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부흥집회를 찾아다니고 새해엔 금식기도원에 가며 교회 봉사도 열심히 했다. 그 사이에 많은 신앙체험까지 하고 장로가 됐지만 마음은 계속 답답하고 의문만 눈덩이처럼 커졌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가’라는 질문을 안고 아내의 권유로 한마음교회에 갔다. 마침 여름수련회가 있었는데 목사님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가시며 믿을 만한 확실한 증거를 주셨다.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며 부활의 표적을 보고 믿으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성령께서 막혔던 마음을 뻥 뚫어 주셨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고, 죄 사함과 영생도 헛것이라고 하셨구나. 부활로 모든 것을 믿을 수 있구나.’ 그제야 내 눈이 밝아졌다. 도망갔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순교했고, 도마는 직접 만져보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다. 사도바울의 회심과 순교도 부활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마침 목사님의 ‘교회에 다니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문제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어야 합니다’는 말씀이 가슴에 떨어졌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했던 자, 마태복음 7장처럼 선지자 노릇하고 능력을 행하고 선한 일을 했지만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자가 나였다.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물어보시는 것 같았다.
‘정말 내가 네 안에 있느냐? 너의 마음 속에 정말로 내가 있느냐, 영접했다고 하는데 정말이냐? 네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있느냐? 네가 정말로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 네 마음을 보아라.’
주님을 끌고 다니면서 내가 가고 싶은 대로 내 마음대로 가고 있으면서 동행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하나님께서 “정말 네가 내 손을 잡고 가느냐. 네 안에 내가 있느냐.” 하시는데 정말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다. ‘실제로 너와 나의 관계가 어떠냐?’ 물으시는 것 같아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이분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어둠 그 자체였다. 소경이 눈을 뜬다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됐다. 정신이 든다. 죄와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는 것이 능력이다.
부활의 주님 앞에 서 보니 나의 실상이 보였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었다. 이분을 내 안에 모셔 들이고 학대하고 근심과 걱정만 끼쳐 드렸고 아무것도 드린 것도 없을 뿐 아니라 아무 상관이 없이 지내온 것이다. 말로는 ‘십자가 사랑을 알아요,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있어요. 부활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을 믿어요.’ 알고 있지, 믿지 않고 있음을 선명히 알게 되면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긍휼히 여겨 달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었다. “아버지 이제부터 빛 되신 주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면서 나가겠습니다.” 그동안 인격적으로 믿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염려하고 판단하고 생활했던 모습이 너무도 징그러웠다. 아버지 마음을 알아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자녀가 돼야겠다는 마음이다.
나를 살리신 하나님 사랑합니다. 온 맘 다해 사랑합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 119:165) 아멘.
박영승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