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외무부가 외교통상부로 개편됐다. 그해 4월 나는 본부 국제경제국장으로 발령받아 귀임했다. 돌아오자마자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대처 태스크포스팀장을 맡아 뛰었다. 6월엔 김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나는 공식 수행원으로서 대통령이 뉴욕과 워싱턴을 돌며 정·재계 지도자들과 만나 새 정부의 정책비전을 설명하고, IMF 사태 극복을 위한 협력을 요청하는 일을 맡았다. 11월에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등 쉼 없이 달렸다.
그 와중에 외교부 선교회 회장을 맡았다. 세계 각지에 흩어진 180여곳 재외공관 외교관들의 신앙생활을 돕는 자리다. 재외공관은 주재국의 행정력과 경찰력이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권 공간이므로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극심한 지역이라도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의 신앙생활을 돕기 위해 매주 설교 테이프와 함께 신앙 서적과 물품을 지원했다. 손수 포장하는 발송 작업이 힘들긴 했지만, 여러 공관에서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보람과 용기를 얻었다.
매년 열리는 재외공관장 회의 때는 외교관들이 본국으로 일시 귀국하는데, 그 일정에 맞춰 김장환 목사님이 이사장으로 계신 극동방송 주최로 재외공관장 조찬기도회가 열린다. 그리스도를 믿는 외교관들이 한데 모여 기도할 때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계 7:9) 서는 광경이 이렇지 않을까 상상하곤 했다. 지금까지도 외교부 크리스천을 위해 도움을 주시는 김 목사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1999년엔 국회 요청으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가게 됐다. 2001년엔 주홍콩 총영사로 부임했다가 이듬해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차관보급)으로 승진 전보돼 통상문제 전문가로 일했다. 조정관으로 근무한 1년 4개월의 절반인 7개월을 해외 출장으로 보낼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나는 주브라질 대사로 임명됐다. 대사급으로선 최고위직 임무지만 차관보급으로서는 조금 비중이 낮은 곳이라 실망했다. 하지만 막상 부임하고 보니 참으로 할 일이 많았다. 브라질 공용어인 포르투갈어는 프랑스어와 유사해 배우기도 쉬웠다.
브라질에 도착해 먼저 찾은 곳 역시 교회였다. 한인교회 담당 목사님이 비자 문제로 1년에 3개월씩 교회를 비워야 했는데 부교역자마저 없어 그 석 달간은 내가 대신 설교해야 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설교 원고를 준비하며 서울 새빛맹인선교회 성경공부반 시절 암송했던 말씀과 외교부 선교회에서 동료들을 섬기며 쌓았던 기도의 덕을 보았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에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대사로 변모해가는 걸 느꼈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