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역에 앞서 하나님과 친밀한 만남이 먼저다

입력 2021-03-30 03:06

감리교회가 영국에서 부흥할 때 일이다. 어느 부잣집에서 요리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감리교인은 안된다고 했다.

그 이유는 감리교인이 요리사로 들어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가정부가 감리교인이 되고 이어 청소부가 감리교인이 되고 결국은 모든 가족이 감리교인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이 됐다면 이 정도 영향력을 미치는 탁월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 삶의 수준을 낮은 데 두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기대를 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엡 5:1)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탁월한 사람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을 섬기는 지도자가 되게 하신다. 그들을 통해 탁월한 일을 이뤄 가신다.

다윗에게는 수백 명의 용사가 있었다. 하나님은 탁월한 믿음의 소유자인 다윗을 그들의 지도자로 세우고 사용하셨다. 엘리야 시대에도 수천 명의 하나님의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탁월한 순종의 사람 엘리야를 하늘을 여닫는 종으로 사용하셨다.

초대교회 시대에도 바울과 같은 탁월한 사람을 들어서 지도자가 되게 하셨다. 그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이뤄 가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다.

탁월한 자가 된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 사람과는 다른 존재, 세상 사람이 갖지 못한 영적 능력, 성도를 섬기는 데 필요한 더 넓고 깊은 영적 안목, 경건함, 겸손함으로 준비된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 앞에 세워지려면 몇 가지 필수적 자세가 필요하다. 첫째는 하나님과 친밀함이다. 탁월함은 하나님과 친밀함에서 온다. 친밀함은 주님 주신 일을 감당하기 전 하나님과 일대일의 만남에 먼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목회 초년병 시절 저지른 가장 큰 실수가 있다. 하나님과 만남보다 하나님이 주신 일에만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런 모습이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하나님은 일보다 당신과 친밀한 만남을 더 귀하게 여기신다. 교회가 성장할수록 이런 말씀을 주셨다. “너는 내가 좋으냐, 내가 주는 일이 더 좋으냐.” 시간이 지나서야 그 깊은 뜻을 알게 됐다. 어느 날, 목회에서 일과 성도만 있었지 주인 되신 하나님의 자리가 없었음을 깨달았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아라비아에서 3년간 하나님과 일대일의 만남을 가졌다.

목회사역의 방향을 변경했다. 주일예배 후 바로 시작했던 심방을 내려놨다. 월요일도 쉬는 날로 정했다. 금요일은 온종일 말씀을 준비하고 기도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일하심이 더욱 강력하게 목회 현장에 임했다.

둘째, 속도보다 방향과 방법이 더 중요하다. 성격이 급하니 빨리빨리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동을 거셨다. 서두를수록 일의 열매가 없다는 걸 깨닫게 하신 것이다.

일본의 신학자 고스케 고야마가 쓴 ‘시속 3마일의 하나님’이라는 책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이 걷는 속도가 시속 3마일인데 하나님도 우리가 걷는 속도로 천천히 역사하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많은 경우 우리가 답답하다고 느낄 정도로 천천히 일하신다. 절대로 서두르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요셉이 철이 들어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리셨다. 모세가 80세가 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 주셨다.

예수님은 30년이 지나서야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셨다. 제자들도 3년이 넘는 기간을 예수님께 훈련받았다. 서두름은 하나님의 방법에 반한다. 아담과 이브는 사단의 속삭임에 서둘러 결정을 내렸다가 넘어졌다.

천천히 가야 하나님의 말씀이 더 잘 들린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도 더 잘 보인다. 천천히 걸어야 자신도 이웃도 잘 보인다. 천천히 걸어가야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분별할 수 있다.

오늘, 걸음을 멈추고 하나님과 만남의 시간을 갖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자. 천천히 걸으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가는 목회를 하자.

이성철 목사(미국 달라스 중앙연합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