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라인’ 안 넘었지만 수위 높이는 北… 정부 “깊은 우려”

입력 2021-03-26 04:03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한 25일 인천 강화도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해북도 개풍군의 모습. 작은 초소와 인민군의 모습에서 긴장감이 느껴진다. 강화도=최현규 기자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같은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저강도 도발을 이어가면서도 그 수위를 높여 한·미 양국을 향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자신들의 대외 기조인 ‘강대강, 선대선’에 따라 인권을 문제 삼으며 강경모드로 나온 미국을 향해 일종의 ‘경고장’을 날렸다는 평가다. 정부는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추가 도발 가능성에 예의주시하면서도 최대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지 약 2시간 만인 오전 9시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가 진행되는 가운데 미사일 발사가 이뤄진 점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NSC는 미국을 비롯한 유관국과 미사일의 세부 제원 및 발사 배경, 의도를 분석해 나가기로 했다.

NSC는 회의 결과에서 ‘단거리 발사체’라고 표현하며 ‘탄도미사일’로 규정하지 않았다. 군 당국은 일본 정부와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한 외신들의 탄도미사일 보도가 잇따르는 데도 확인을 미루다가 NSC가 끝난 뒤 브리핑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정부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탄도미사일이 되면 사거리와 상관없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 되는 만큼 신중한 판단을 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탄도미사일일 경우 추후 안보리에서 논의될 전망이지만 단거리 미사일로 추가 제재가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미국이 대북정책 검토 막바지에 들어간 시점에서 도발한 데 대해 한·미는 바짝 긴장하며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외교부 당국자는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성 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과 통화한 사실을 언급하며 “미국도 이 상황에 대해 굉장히 경각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면서 “대북정책 검토 과정이 마무리 단계로 가는데 당연히 좋은 징조는 아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도발이 미 대북정책에 영향을 주려는 목적일 것으로 봤다. 미국이 인권 문제까지 끌고 들어와 압박 강도를 높인 상황에서 북·중 정상 간 친서를 통해 중국을 등에 업은 북한이 그동안 해온 ‘벼랑 끝 전술’을 이용해 대북정책 강도를 낮추려 한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이번 도발이 시작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대북소식통은 “순항미사일에 이어 탄도미사일까지 연속으로 발사하는 등 북한이 도발 수순에 들어갔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4월 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을 전후로 고강도 도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방한 중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 뒤 언론발표에서 동북아의 평화 안정을 강조하며 “관련국이 군비경쟁과 모든 종류의 군사 활동 활성화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내주 중국에서 왕이 외교부장과 회담하는 방안을 협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선 임성수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