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사법농단 의혹’ 연루 법관들에게 첫 유죄 선고를 내린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부장판사 윤종섭)의 판결문에는 유독 ‘이 법원은 ~라고 본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직권남용에 대해 지금껏 없던 새 해석론을 내놓은 탓이다. 법원 내에서는 이 재판부가 새롭게 제시한 ‘직권남용론’을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25일 국민일보는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재판개입 등 일부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1심 판결문을 분석했다. 이 재판부는 458쪽에 이르는 판결문 본문에 ‘이 사건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해석’이라는 별도 목차를 만들어 54쪽을 할애했다. 직권남용의 새 해석론을 구축하는 데 각별한 공을 들인 셈이다.
판결문의 핵심 문장은 “이 법원은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가 할 수 있는 것은 (판사에 대한) 현저한 지연이나 명백한 잘못의 ‘지적’에 그치고, 이를 벗어나 명백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라고 하는 등 어떠한 ‘권고’를 하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본다”는 것이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재판에 대한 ‘지적 권한’이 있지만 지적을 넘어 권고가 되는 순간 직권남용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요컨대 지적과 권고의 차이를 재판개입 행위에 대한 직권남용 여부의 경계로 삼은 것이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대법원의 직권남용 판례를 새롭게 확장해석한 대목이다. 앞서 대법원은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직권을 행사하는 모습으로 상대방에게 실질적·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 직권남용이 성립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전반부 문구를 두고 “이 법원은 ‘속하는’ 부분만을 강조해 볼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일반적 직권에 속하는 부분에 관련됐다는 부분, 즉 ‘관하여’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일반적 직권 범위 내 행위의 동기나 목적이 위법·부당한 경우(직권의 재량적 남용)는 물론, 일반적 직권의 정당한 범위를 벗어나더라도 상당한 관련성이 인정되는 경우(직권의 월권적 남용)도 말한다고 본다”는 게 재판부의 새 해석론이다.
이에 대해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직권남용 처벌을 위해 ‘판사 지적 권한’이라는 협소한 권한을 하나 새로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법농단 의혹을 처벌하려다 오히려 헌법 103조에 따른 법관의 재판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 판사는 “죄형법정주의(범죄·형벌은 법률에 규정돼야 한다는 원칙)를 벗어난 판시”라며 “향후 검찰의 ‘직권남용 만능주의’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다른 부장판사는 “교묘한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를 처벌하려면 적극적 법해석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국민의 ‘법 감정’으로는 단죄가 상식적이고, 법관의 재판독립은 헌법 27조에 나오는 국민의 재판청구권에 앞설 수는 없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무리한 해석론이라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우세한 편이다. 판결문에 ‘지적과 권고를 엄밀히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고 종종 지적 그 자체에 일정한 권고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는 해석상 난점이 나와 있기도 하다. 한 법관은 “윤종섭 판사가 뜨거운 화두를 던졌다”며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평가를 거쳐 정립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