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충격 속에 우리나라 민간부문의 빚이 전체 경제 규모의 두 배를 훌쩍 넘을 정도로 불어났다. 더 큰 문제는 가계와 기업 모두 빚을 갚을 능력이 떨어지고 있으며, 특히 저소득층·영세기업일수록 한계상황에 몰릴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의 실핏줄 구실을 하는 자영업자 중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고위험군 수가 19만 가구를 넘어선 상태다.
한국은행은 25일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서 지난해 말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가계·기업 부채잔액) 비율이 215.5%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통계가 시작된 197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며, 전년 대비 증가 폭(18.4% 포인트) 역시 최대다. 가계와 기업이 진 부채의 무게가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모양새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1726조1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7.9% 늘었고, 기업신용 역시 2153조5000억원으로 10.1% 불었다. 처분가능소득(소득-비소비 지출)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75.5%를 나타내 13.2% 포인트 높아졌다. 소득에 비해 빚 부담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영업자와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는 모두 악화되는 추세다. 자영업자의 매출은 지난해 1분기 -5.5%(전년 동기 대비), 2분기 -3.6%, 3분기 -1.9%, 4분기 -4.6%로 연중 내내 마이너스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면 대출은 1분기(10.0%)에서 4분기(17.3%)로 갈수록 증가세가 세졌다. 줄어든 벌이를 대출로 메우고 있는 셈이다.
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 비율(DSR)은 지난해 3월 말 37.1%에서 연말 38.3%로 1.2% 포인트 올랐다. 소상공인 원리금 상환유예 정책 효과를 제외하면 DSR 상승 폭은 5.7% 포인트까지 높아진다. 자영업자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LTI)도 이 기간 195.9%에서 238.7%로 뛰었다.
이렇다 보니 부채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자영업자는 지난해 말 19만2000가구로 늘어 빚이 있는 자영업자의 6.5%나 됐다. 고위험 가구는 모든 자산을 처분해도 빚을 다 갚을 수 없는 가구를 의미하는데, 이들 부채 규모만 76조6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3월 이후 9개월 만에 37조9000억원이 불었다. 고위험 가구 가운데 중·저소득층(1~3분위) 비중은 가구 수 기준으로 59.1%, 부채 기준으로 40% 정도를 차지한다.
기업의 재무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해 부도 위험이 큰 ‘상환위험기업’은 전체 대상기업의 6.9%였으며, 이들 기업이 보유한 금융여신 비중은 전체 대상기업 여신(403조8000억원)의 10.4%인 42조원으로 증가세가 지속됐다.
한은은 “각종 금융지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취약업종을 중심으로 기업 채무상환 능력이 크게 저하됐다”며 “금융지원 조치 정상화 시점에 취약 부문의 신용 리스크가 한꺼번에 드러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