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잔병 낙인에 숨어 삽니다”… ‘천안함’ 생존장병의 눈물

입력 2021-03-26 00:12 수정 2021-03-26 03:44
천안함 생존장병 전우회장인 전준영씨가 25일 대전의 사무실에서 생존장병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든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그의 왼쪽에는 천안함 복무 당시 입었던 군복, 오른쪽에는 구조 당시 입었던 속옷이 놓여 있다. 당시 천안함 갑판병이었던 그는 임무교대 후 침실로 들어갔다 폭침을 당했다. 대전=윤성호 기자

“천안함 생존장병임을 대외적으로 밝히는 사람은 제가 유일무이할 것입니다. 순직한 이들은 영웅으로 기억되지만 생존장병들은 여전히 패잔병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신분을 숨긴 채 살고 있습니다. 국가는 생존장병들에게 예우와 취업을 약속했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스스로 아픔을 입증해 국가의 지원을 받고 일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해군 병장으로 천안함 갑판병이었던 전준영(34) 천안함 생존장병 전우회장은 2010년 3월 26일 그 날 그 시각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천안함에서 경계근무를 선 이후 임무교대를 하고 침실로 들어온 직후였다. 그러나 함께 근무했던 전우 중 58명은 살아남았지만, 입대 동기 4명을 포함한 46명은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전씨는 천안함 폭침 11주기를 앞둔 25일 대전의 한 사무실에서 국민일보 기자와 만났다. 그는 생존장병들에게 천안함 폭침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존장병 대부분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고 있고, 패잔병이라는 고통 속에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했다.

전씨도 PTSD를 이유로 2019년 5월 국가유공자(7급)에 지정됐다. 그는 “2010년 5월 전역한 뒤 한 달간 술만 마셨다. 계속 울었다. 잠도 잘 못 잤다”며 “가족 권유로 병원을 갔는데, PTSD 진단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전씨를 포함해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생존장병 12명 중 9명이 PTSD를 앓고 있다. 그는 “아직도 전우들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고 했다. 그는 내년 5월 PTSD 재판정 신체검사에서 상태 호전 판정을 받으면 국가유공자 직을 상실한다. 한시적 유공자인 셈이다. 그는 “PTSD 증상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르다”며 “검사 당일 괜찮으면 결과가 좋게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전씨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치료를 미루다 상태가 악화된 다음 병원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인 탓이다. 그는 “예비역들이야 아프다는 말이라도 할 수 있지만 군에 남은 생존장병들은 그러지도 못한다”며 “군이 ‘아파서 정신과에 다녀오겠다’는 군인을 어떻게 보겠나. 진급 문제도 있어 말도 꺼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생존장병 중 24명은 계속 군 복무 중이다.

한 생존 장병은 2017년 전역한 뒤 전씨의 권유로 찾은 병원에서 PTSD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사건 발생 7년이 지나서야 자신이 PTSD 환자임을 알게 된 것이다. 전씨는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님도 한사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막상 병원을 모시고 가니 눈물을 글썽거렸다”며 “의사선생님이 이야기를 들어주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더라”고 말했다.

생활은 여전히 어렵다. 정부가 생존장병 취업 보장을 약속했지만 실제 지원을 받은 사람은 얼마 없다고 전씨는 말했다. 그는 “지난해 국가보훈처의 취업지원을 받아 공기업에 입사한 친구를 제외하면 생존장병 대부분 알아서 취업했다”며 “무직인 생존장병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전씨도 6년간 다니던 직장을 지난해 그만두고 다시 취업 준비 중이다. 그는 “정부가 3월에만 반짝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조금만 더 생존장병 처우 개선에 힘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천안함 폭침·제2연평해전·연평도 포격도발 희생자를 추모하는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은 26일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다. 천안함 선체가 보존된 곳에서 기념식이 열리는 건 처음이다. 다만 코로나19 여파로 그 규모는 대폭 축소됐다.

대전=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