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설렘·호기심 안고 첫 사극… 이준익 감독과 해서 다행”

입력 2021-03-28 21:11 수정 2021-03-28 21:12
배우 설경구가 최근 국민일보와의 화상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그는 데뷔 28년 만에 영화 ‘자산어보’로 처음 사극에 도전했다. 씨제스 제공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땐 “물고기로 영화를 찍는 게 말이 되냐”고 물었다. 두 번째 읽었을 땐 마음이 움직였고, 세 번째엔 눈물이 났다고 했다.

“참 따뜻한 영화예요.” 배우 설경구는 영화 ‘자산어보’를 딱 한 마디로 정의했다. 연기 인생 28년 만에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한 설경구를 최근 화상으로 만났다. 설경구는 “시사회에 이렇게 관객이 없는 건 처음이었다”며 “코로나19로 다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데 ‘자산어보’로 희망을 안고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31일 개봉을 앞둔 ‘자산어보’는 흑산으로 유배된 학자 정약전이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와 함께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돼 가는 이야기다. ‘왕의 남자’로 대한민국 최초의 1000만 사극 영화를 탄생시킨 이준익 감독의 신작이다. 이 감독의 전작인 ‘사도’ ‘박열’처럼 전쟁이나 정치 대신 시대를 몸부림치며 살아온 인간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시대극이다. 설경구가 연기한 정약전은 신유박해로 흑산도에 유배 간 뒤 민중의 삶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고자 어류에 관한 책을 쓰는 인물이다. 이 감독은 “굳이 묻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설경구가 연기하는 그대로가 정약전이었다”고 말했다.

1993년 연극 ‘심바새매’로 데뷔한 설경구는 영화 ‘실미도’ ‘해운대’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 ‘살인자의 기억법’ 등에서 굵직한 연기를 선보여 왔다. 하지만 사극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의 첫 사극 ‘자산어보’는 영화 ‘소원’으로 인연을 맺은 이 감독과의 신뢰로 성사됐다. 촬영 초반 갓을 쓰고, 수염을 붙인 모습을 보며 ‘내게 맞는 옷일까’라는 고민을 했지만, “잘 어울린다”는 이 감독의 칭찬에 용기를 얻기도 했다. “사극 제안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용기가 안 나서 미루고 미뤘어요. 언젠간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낯선 도전이라 자신이 없었죠. 하지만 이준익의 사극은 하고 싶었어요. ‘소원’을 함께하면서 이 감독님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보며 느낀 게 많았어요. 첫 사극을 이 감독님과 하게 돼 다행입니다.”

‘자산어보’는 이 감독의 ‘동주’처럼 흑백이다. 색감을 배제하면 작품의 본질이 뚜렷해지고, 배우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이 감독의 생각에 설경구도 동의했다. 하지만 부담을 갖진 않았다. 하던 대로 역할에 몰입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러 장치를 최소화했기 때문에 더 섬세하게 연기해야 했다”며 “그렇다고 힘을 주지도, 빼지도 않았다. 작품에 집중하니 흑백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컬러 화면의 사극도 찍어보고 싶다”고 했다.

‘불한당’의 임시완 등 후배와의 호흡이 남달라 ‘브로맨스 장인’으로 불리는 설경구가 창대 역의 변요한과는 어떤 유대를 선보일지도 관심사다. 변요한은 설경구의 추천으로 이 영화에 캐스팅됐다. 2013년 영화 ‘감시자들’에 함께 출연했을 때 변요한의 눈빛을 설경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설경구는 “변요한은 후배라기보다는 좋은 친구”라며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가 되려고 한다. 선배가 후배에게 반드시 귀감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웃었다.

설경구의 다른 애칭은 ‘지천명 아이돌’이다. 전광판 홍보, 생일 조공 등 아이돌 팬클럽에 버금가는 열성 팬덤을 몰고 다닌다. “팬들의 사랑을 체감하죠.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분들이면서 늘 저를 긴장하게 만드는 분들이에요.”

50대 설경구의 자기 관리 비결은 성실함에서 나온다. 앞서 변요한은 설경구가 어떤 상황에서도 매일 새벽 줄넘기를 1000번 이상 한다고 전했다. 설경구는 “새로운 것을 맡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며 “지방 촬영할 때는 운동할 곳이 없어 줄넘기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습관이 됐다”고 전했다.

설경구를 달리게 하는 원동력은 설렘과 호기심이다. “늘 새로운 경험을 하려고 합니다. 호기심과 설렘이 심장을 뛰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서 정약전이 보였다. 생소한 바다 생물을 보며 자산어보를 만들 때의 심정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