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발로 차고 역주행 하고… ” 배달 오토바이 ‘무법 질주’

입력 2021-03-26 04:02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인 배달 오토바이 기사들이 지난 22일 정지선을 넘어 횡단보도를 점거한 채 멈춰 서 있다. 권현구 기자

“빵, 빵~” “길 좀 막지 마요! 바빠 죽겠는데.”

지난 22일 오후 1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앞 사거리. 점심시간 통행량이 부쩍 많아진 도로 위에서 한 배달원(라이더)이 앞서가던 주황색 택시를 향해 큰소리를 질렀다. 택시와 우측 도로 사이 비좁은 공간에서 위태로운 간격을 유지하던 라이더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왼발로 택시 뒤 범퍼에 발길질한 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라이더의 고함에 놀란 시민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도망치듯 사라진 오토바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이 라이더는 우회전 전용 차로에서 앞서가던 택시와 인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택시를 추월하려다 충돌할 뻔했다. 택시와 인도 사이 공간은 성인 한 명 정도가 지나갈 만한 공간이라 애초 추월이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라이더는 택시가 일부러 자신의 진로를 방해했다고 생각한 듯 택시에 화풀이했고, 애먼 택시 승객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같은 날 오후 7시18분. 낙성대역 방면에서 오던 5530번 초록색 시내버스가 서울대입구역 5번 출구 앞 정류장에 멈춰 섰다. 정류장 주변에 차들이 밀려 있던 탓에 인도에서 1.5m가량 떨어진 곳에서 버스 뒷문이 열렸다. 버스에 탑승하고 있던 김모(42·여)씨가 지상으로 발을 내려놓는 순간 한 배달 오토바이가 김씨 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깜짝 놀란 김씨는 한참 동안 멍한 표정으로 얼어 붙어있었다. 그는 취재진에게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어 “정류장이니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는 버스에서 내릴 때도 긴장해야 할 것 같다”면서 “(라이더는) 돈 벌려다 사람 쳐서 오히려 쪽박 차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국민일보는 지난 2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앞에서 8시간(오전 10시~오후 2시, 오후 4~8시) 동안 배달 라이더의 교통 법규 위반 사례를 집계해봤다. 그 결과 횡단보도 주행 31건, 역주행 18건, 신호 위반 17건, 인도 주행 14건, 기타(안전모 미착용·무단 정차·주행 중 흡연·휴대전화 조작) 17건 등으로 나타났다. 보행자의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횡단보도 주행은 저녁 식사 시간과 직장인 퇴근 시간이 맞물린 오후 6~8시(21건)에 집중적으로 목격됐다.

슬리퍼를 신은 배달 오토바이 기사가 안전모도 착용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을 태우고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 권현구 기자

정지선 위반은 436건으로 사실상 정지선을 지키는 배달 오토바이보다 지키지 않는 라이더를 찾는 게 훨씬 쉬울 정도였다. 횡단보도까지 배달 오토바이가 침범해 보행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다수였다.

정지선을 넘어간 상태에서 예측 출발을 했다가 맞은 편 차와 부딪힐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숭실대입구역에서 관악구청 방면으로 이동하려던 배달 오토바이 4대가 뒷바퀴를 정지선에 대고 기다리다가 직진 신호가 떨어지기 전 미리 출발했다. 이 때문에 반대편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고 이동하던 흰색 SUV 차량이 갑자기 좌측에서 돌진하는 오토바이에 놀라 황급히 비상등을 켠 채 한동안 사거리 한복판에 정차해야 했다. 4대의 배달 오토바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굉음을 내며 유유히 사라졌다.

이 지역 인근 주민들은 배달 오토바이의 저돌적 주행에 고통스러운 심경을 토로했다. 서울대입구역 인근에서 5년째 주차장 관리로 일하고 있는 이모(79)씨는 “(지난해 들어선) 배달 전용 물류창고 앞에 가보면 오토바이가 길가나 인도 위에 버젓이 주차돼 있는데 주차장에 들어오고 나가는 고객 차량과 부딪힐까 매번 신경이 날카로워진다”며 “라이더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좁은 골목길을 휘젓고 다니는 바람에 최근에는 밤늦게까지 소음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지웅 안명진 임송수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