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식당 오너셰프로 2년간 일하며 겪었던 일 담아

입력 2021-03-25 19:36

“음식이나 요리를 서사의 중심축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빠짐없이 먹는 장면이 나왔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뭔가를 먹이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그녀 말대로 결국 식당을 차리려고 그렇게 소설 속에서 한풀이를 했던 것일까.”

소설가 천운영은 2016년 말 서울 연남동에 스페인 식당 ‘라 메사 델 키호테(돈키호테의 식탁)’를 연 후 2년 정도 오너셰프로 운영했다. 그가 소설 대신 음식을 내놓으면서 지냈던 당시의 경험을 책 ‘쓰고 달콤한 직업’으로 펴냈다. 식당을 운영하며 일간지에 연재했던 글을 다듬고 건축가 유현준 등과 직접 차린 음식을 먹으며 인터뷰했던 글을 함께 역은 그의 첫 산문집이다.

2000년 등단 이후 작가 혹은 선생님으로 불린 천운영이 ‘업주님’이라는 어색한 호칭을 얻게 된 데는 반려견의 죽음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15년을 같이 산 반려견이 곡기를 끊다가 죽기 전날 만들어준 계란프라이와 사료를 맛있게 먹던 모습을 본 후 식당을 차려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내가 살기 위해서였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 먹이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었다.”

스페인 식당이었던 것은 2013년 한국문학번역원 프로그램으로 스페인에 머물며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했던 음식을 찾아다닌 것이 계기가 됐다. 천운영은 이후 스페인을 오가며 요리를 배웠다. 반려견의 죽음이 식당을 차린 직접적이 계기라면 공장을 운영했던 아버지를 도와 직원들의 하루 세끼 밥상을 책임졌던 어머니 ‘명자 씨’는 그에게 요리 유전자를 물려줬다. 명자 씨는 식당 개업 후 그의 가장 큰 조력자 역할도 했다.

자영업자로서의 만만찮은 현실도 책 곳곳에 묻어난다. 천운영은 원가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주변 가게 주인으로부터 “정신 좀 차리세요”라는 지청구를 듣는 한편 온갖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이 ‘관리해주겠다’며 걸어오는 영업 전화에 시달리기도 한다. 가게를 정리하고 소설가로 돌아가려는 상황에서 마주친 중고 주방업자의 말은 무심하지만 스산하다. “요즘엔 6개월 1년 된 가게들이 많이 나오니까, 거기 다니기도 바쁘죠. 3개월도 허다해요. 2년이면 많이 버티신 거예요.”

책 뒤에는 천운영이 식당을 하면서 만났던 유현준, 배우 문소리,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소설가 김훈 등과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때에 따라 달리 준비한 음식을 매개로 풀어가는 이야기는 인물들의 또 다른 면을 드러낸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