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미사일 발사 포착한 韓·美 침묵 왜?

입력 2021-03-25 04:03

한·미 군 당국이 사흘 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정황을 실시간으로 포착하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순항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데다 불필요한 긴장 국면을 조성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분석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첫 ‘저강도 도발’을 감행한 북한 역시 관련 소식을 전하지 않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지난 21일 아침 서해 지역 평안남도 온천 일대에서 순항미사일로 추정되는 (미사일) 두 발이 발사된 것을 포착했다”며 “한·미 공조하에 미사일 관련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흘 만에 관련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통상 합참은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이를 즉각 언론에 공개했다. 지난해 4월 북한이 김일성 주석 생일 전날 강원도 문천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순항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도 이를 곧바로 알렸다. 이번엔 알고도 사흘이나 비공개한 것은 이례적 조치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뒤늦게 공개한 배경에 대해 “북한 관련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또 미사일 발사 거리·고도 및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참관 여부 등을 묻자 “자세한 제원을 분석하고 있다” “말씀드릴 사안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한·미가 이번 발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분석과 함께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관련 사실을 불문에 부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순항미사일은 탄도미사일과 비교해 속도가 느리고 파괴력도 약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관리가 이번 발사를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 아니다”며 북한과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최근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을 비롯해 북한 사업가의 미국 송환 등으로 북·미 간 긴장이 높아진 상황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미 정보 당국 모두 가뜩이나 고조된 북·미 간 긴장수위가 미사일 발사 사실 공개로 더 높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 역시 미사일 발사 이후 관련 소식을 보도하지 않은 채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사일 발사 다음 날 미사일 제원과 김 위원장의 참관 여부 등을 상세히 보도하던 것에 비하면 이례적인 반응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저강도 도발이지만 미국에 일련의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데 성공했을 것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공식화할 때까지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생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순항미사일을 동해가 아닌 서해로 발사하며 미국에 대해 경고는 하되 불필요한 자극은 최소화하려는 의도를 내비쳤다.

북한이 발사 시점까지 치밀하게 고려해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무력시위에 나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한국을 떠난 이후에야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며 “도발 수위를 조절하면서도 향후 대북정책에 따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혹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