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중국에서 이름을 잃었다. 우리 정부가 만든 한자 이름 ‘신치(辛奇)’는 사실상 쓰이지 않는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지난 2013년 김치의 한자 이름 신치를 만들었다. 매울 신(辛)과 기이할 기(奇)자를 썼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중국 내 언어학자, 마케팅 전문가가 1년여간 협의해 정한 이름이다. 농식품부는 중국과 홍콩에 상표권 등록을 완료했다. 통일된 명칭으로 중화권 수출을 장려하자는 취지다.
김치는 중국에서 ‘한식포채(韓式泡菜)’, ‘절건포채(切件泡菜)’ 등 제각각으로 불렸다. 중국에 김치를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도 이를 따랐다. 중국 쓰촨성에서 유래한 절임 채소 ‘파오차이(포채·泡菜)’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취재 결과, 2013년 이후 신치라는 이름을 붙여 중국에 수출된 제품은 없다. 중국에 김치나 김치 가공식품을 파는 국내 기업들도 신치를 쓰지 않았다(사진).
신치는 왜 파오차이를 대체할 수 없을까. 중국은 자국 내 유통·판매되는 식품의 기준 규격을 ‘국가표준(GB)’으로 관리한다. GB에 표기된 용어와 위생요건 등을 따르지 않으면 팔 수 없다. GB에서는 한국의 김치 등 절임류 채소를 파오차이로 분류한다.
정부의 작명은 반쪽짜리였다. 애초 목적은 신치 단독 표기였다. 이를 위해서는 GB 수정 혹은 등록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빠졌다. 현재 신치를 표기하려면 파오차이와 병기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 김치를 파는 한 기업 관계자는 “신치에 대한 정부의 홍보가 충분했는지 의문”이라면서 “신치를 병기할 경우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 부처조차 신치 사용을 두고 엇박자를 냈다. 김치를 파오차이로 번역할 수 있다고 명시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훈령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7월 만들어진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문체부 훈령 제427호)은 “중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번역 및 표기는 관용으로 인정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예시로 ‘김치찌개’를 ‘泡菜湯’(포채탕·파오차이찌개)으로 들었다. 문체부는 지난 1월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자 “정비하겠다”고 했다. 박기태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대표는 “신치를 만들어 놓고 부처끼리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GB 검토를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다. 농식품부는 “신치를 개발한 후 중국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일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이 부담을 느껴 홍보가 부족했다”며 “문체부 훈령을 개정한 후 한식당과 기업의 의견 수렴을 거쳐 신치 확산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변지원 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중국은 국가 차원의 표준화 작업을 중시한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며 “한국에는 이에 대응할 부처가 없다.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소연 쿠키뉴스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