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뒤 반등을 노리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에 끙끙 앓고 있다.
업체들은 생산 조절 등의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예상치 못한 재해로 반도체 수급난이 심화하면서 혼란에 빠진 상태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 업체들도 이르면 다음 달부터 생산 차질이 우려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현재 보유 중인 반도체 재고량을 수시로 점검하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 대표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기아는 적정 재고량을 확보해 왔지만 최근 반도체 수급난이 확대돼 2분기 감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부품 재고 조절을 하고 있지만 일부 차량용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이 있다”며 “생산 계획 등을 통해 대응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기아는 첫 전용 전기차인 아이오닉5와 EV6의 출시를 앞둬 고민이 더 크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많은 반도체가 필요하다. 아이오닉5는 사전계약만 3만5000여대를 넘어선 상황이다.
한국GM은 이미 지난달부터 반도체 품귀 사태로 타격을 받고 있다. 한국GM 부평2공장은 지난달부터 공장 가동률을 약 50%로 낮췄다. 반도체 수급난이 악화되면서 다음 달에도 절반 수준의 가동률을 유지할 전망이다.
차량 반도체 품귀 현상은 지난해 말부터 불거졌다. 전세계 반도체 제조공장에서 차량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수준인데, 급격한 차량의 전동화로 수요가 급증한 탓이 크다. 최근엔 차량용 반도체 ‘빅3’ 기업들이 잇단 재해로 생산을 중단했다.
일본 르네사스는 지난 19일 이바라키현 나카공장 화재로, 네덜란드 NXP와 독일 인피니언은 지난달 한파에 따른 대규모 정전으로 공장을 닫았다. 이들 업체가 생산 라인을 완전히 복구하려면 최소 3개월쯤 소요될 전망이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전 발주를 받아 만드는 차량용 반도체의 특성상 급증한 수요를 단기간에 따라잡긴 어렵다. 차량용 반도체의 마진이 작아 공급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점도 원인으로 거론된다. 또 전세계적으로 PC·모바일용 반도체 공급난까지 겹쳐 완성차와 IT 업체 간 경쟁이 심화할 것으로도 예상된다.
각국 정부와 업계는 반도체 증산을 위한 협력 요청에 나서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차량용 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 TSMC가 있는 대만 정부에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