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한부모 가정과 친구이자 가족처럼 동행하는 ‘프래밀리’

입력 2021-03-26 17:06
다문화 한부모가족을 지원하고 함께 예배하는 프래밀리 대표 정종원 목사와 김성은 사모가 지난 15일 서울 강북구 엄마의앞치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식당 겸 카페 엄마의앞치마는 다문화 한부모가족의 자립을 위해 지난 1월 문을 열었다. 신석현 인턴기자

지난 15일 찾은 서울 강북구의 식당 겸 카페 ‘엄마의앞치마’는 오픈 준비가 한창이었다. 새싹삼과 각종 과일로 만든 청이 놓인 진열대 뒤 주방에선 강성희(44)씨가 베트남 반미 샌드위치와 월남쌈 등에 들어갈 고기를 굽고 있다. 메뉴판에 ‘베트남 엄마’라고 소개된 강씨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귀화해 두 딸과 사는 한부모가족의 가장이다. 엄마의앞치마는 강씨와 같은 다문화 한부모가족의 자립을 위해 다문화 사역단체 사단법인 프래밀리(대표 정종원 목사)가 지난 1월 문을 열었다.

정종원(42) 목사는 프래밀리를 “같은 아픔과 어려움을 가진 다문화 한부모가족에게 가족이자 친구인 공동체를 만들어주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프래밀리는 한국에 와서 한국인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가정폭력과 이혼, 사별 등의 이유로 한부모가족이 된 이주민 가정을 대상으로 사역한다. 친구(Friend)와 가족(Family)의 영문 합성어인 프래밀리엔 경제·제도적 지원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로서 함께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엄마의앞치마 전경. 신석현 인턴기자

프래밀리를 시작한 건 2016년이지만, 사실 사역의 시작은 2008년부터였다. 사무국장으로 프래밀리를 함께 이끄는 김성은(37) 사모가 먼저 이주민 사역에 마음을 품었다. 당시 총신대에서 사회복지학 공부를 마치고 노인복지관에서 일하던 김 사모는 이주민 여성에게 한국어 교육을 하는 봉사활동을 기획하다가 그들의 삶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외국인근로자센터로 옮겨 이주민을 지원하고자 했지만 한계를 느꼈다.

김 사모는 “정부와 지자체 예산을 받으면 한국어 교육이나 김장 등 정해진 활동을 해야 하는데 저는 이주민 여성, 특히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가 된 여성들의 정서적인 부분을 돌보는 일에 더 마음이 갔다”며 “기관에서 관련 사업을 기획하기도 했는데 잘 안 됐다. 오기가 생겨 주말에 혼자 다니며 이주민 여성들을 만나 지원하고 관계를 쌓았다”고 말했다.

정종원 목사와 김성은 사모가 프래밀리 캠프에서 다문화가족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습. 프래밀리 제공

당시 함께 봉사활동을 다니던 정 목사와 김 사모는 2009년 결혼 후 하루 1000원씩 모아 결혼기념일에 다문화 한부모가족을 초청해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대접하고, 캠프를 열어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두 사람의 활동이 계속되자 후원자들이 하나둘 생겼다. 2016년 비영리단체를 만든 후 이듬해 사단법인을 설립해 전업 사역을 시작했다.

두 사람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다문화 한부모가족은 생활의 어려움과 사회적 차별을 겪으면서 정서적 회복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김 사모는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엄마들은 종일 단순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고, 엄마의 어눌한 한국어를 듣고 배운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왕따나 차별을 경험했다”며 “가정불화와 학업 중단 등 다양한 문제의 근본적 원인인 정서적 문제의 해결이 절실했다”고 말했다.

매월 1번 열리는 프래밀리 공동체 모임에서 다문화가족 아동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모습. 프래밀리 제공

프래밀리는 한 달에 한 번, 두 사람과 이주민 가족이 함께하는 공동체 활동을 진행한다. 이주민들은 비슷한 처지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회복을 경험했다. 이외에도 두 사람은 각각의 가족을 따로 만나 관계를 쌓고 필요한 것을 지원한다. 주거비와 병원비 등 자금과 생활 물품이 필요하면 제공하고, 언어나 절차적인 문제로 동행인이 필요할 때 함께한다.

강씨는 “남편과 이혼 후 혼자 삶을 꾸려가는 게 쉽지 않았는데, 두 분에게 상담을 받고 비슷한 상황의 엄마들을 만나 대화도 나누면서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다”며 “프래밀리의 도움으로 지하 방에서 이사하고 학비를 지원받아 아이들도 학교에 편히 보낼 수 있어서 가정이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프래밀리는 정부 지원금 등 공적자금을 받지 않고 순수하게 후원금으로만 운영한다. 정 목사는 “지원금을 받으면 불법체류자나 미등록 아동 등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민을 돕기 어렵고, 지원 활동에도 제약을 받는다”며 “후원금만으로 운영하는 일이 쉽진 않지만 그때그때 정말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을 위한 기관이 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시작한 사역이지만, 부부는 처음엔 이주민들을 전도하려 하지 않았다. 이미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 많고 마음을 완전히 열지 않았을 땐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헌신을 보며 신앙을 가지고 함께 예배하길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정 목사는 2016년부터 매주 함께 모이는 예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매월 마지막 주에 드리는 가족 전체 예배엔 코로나19 이전까지 150여명이 참석했다.

두 사람은 프래밀리가 다문화가족의 자립을 위한 공동체가 되길 바란다. 프래밀리는 다문화여성과 자녀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새싹삼 등을 수경재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더누림’과 엄마의앞치마를 만들었다. 돌봄과 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주말 대안학교 ‘위캔스쿨’도 운영한다. 프래밀리의 소망은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위캔스쿨을 평일에도 상시 운영할 수 있는 학교로 만드는 것이다. 정 목사는 “저희와 일하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위캔스쿨에 맡겨 돌봄 문제를 해결하고 위캔스쿨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교육한다면 자연스레 신앙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 사모는 “프래밀리 사역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신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라며 “어려운 이들의 영혼을 채우는 일에 교회와 그리스도인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함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