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과 인권’ 이슈, 바이든 출범 후 난제로 부상

입력 2021-03-27 04:07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예상보다 높은 강도로 북한 인권 문제를 몰아붙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의 의견을 중시한다”며 싱가포르 합의, 종전선언 등 온갖 장밋빛 구상을 들고 간 우리 정부의 기대는 ‘북한 인권’을 작심하고 때린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 결과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 양국이 최초로 내는 공동문서라며 잔뜩 기대를 모았던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담 공동성명엔 ‘비핵화’가 빠졌고, 외교가에선 “역대 가장 짧은 공동성명” “이견을 제하다 보니 시급히 마무리된 횡설수설한 성명”이란 혹평도 나왔다.

2+2 회담 전날인 지난 17일 있었던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블링컨 장관 간 회담에선 ‘북한·북핵 문제’라고 표현하며 ‘인권’은 명시하지 못했다. 블링컨 장관의 문재인 대통령 예방과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 인권에 대해 한·미 양국이 관심을 공유하고 있다”면서도 “우선 해결해야 될 일이 많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북한 주민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증진될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며 인권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았다. 북한 인권을 바라보는 한·미의 극명한 시각차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양국 간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되는 양상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만 하더라도 북한 인권 문제가 이렇게까지 빠르게 난제로 부상할 것이란 관측은 많지 않았다. 2월 초 미 국무부 대변인실이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 검토의 일환으로 북한 내 인권 존중을 촉진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며 북한 인권을 처음 언급했을 때 우리 정부 당국자는 “항상 하던 얘기”라고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인권은 진보정당인 미 민주당이 그동안 고수해온 가치이고, 이것이 북·미 대화를 가로막는 요소가 되진 않을 것”이란 의견이 다수였다. 지금도 이런 견해가 주를 이루지만 2+2 회담 이후 북한 인권 문제를 대하는 무게감은 다소 무거워졌다. 수주 내 임명할 것으로 보이는 대북특별대표와 함께 대북인권특사까지 임명된다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서 핵 문제와 함께 인권이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우리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애써 외면하려는 것은 북한이 보이는 민감한 반응 때문이다. 특히 2015년 유엔 인권위원회가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은 그동안 북한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선언적 성격에 불과했던 것과 차원이 달랐다. 인권 문제에 책임 있는 북한 당국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하는 구체적 조치를 담고 있어 북한을 자극하는 데 충분했고, 실제 북한은 외교력을 총동원해 이 결의안을 부결시키려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26일 “당시 결의안은 사실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겨냥했고, 북한으로선 자신들의 최고 존엄을 건드린 것”이라며 “이런 이유 등으로 북한이 인권 문제를 언급하는 데 강하게 반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이런 입장을 고려한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를 잠시 접어두는 데에서 그친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숙원사업처럼 여겼던 ‘대북전단금지법’까지 꺼내 들며 북한을 달랬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접경지 주민의 안전이라는 특수한 상황’ ‘주권국가로서의 행위’를 앞세워 여당 단독으로 강행처리했다. 유엔 인권위원회에선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는 방식의 ‘소극적 어필’도 이어갔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이런 행동은 바이든 행정부를 맞이하면서 한국을 향해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다. 제3국에서의 전단 살포 행위는 단속 대상이 아니라는 지침을 부랴부랴 만들어 미 의회와 행정부 설득에 나섰다. 그럼에도 미 국무부가 발간하는 인권보고서엔 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식의 우려 사항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또 통일부가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탈북자 주도의 두 비정부기구인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의 설립을 취소한 사실, 북한 인권 관련 단체 25개가 통일부의 감사를 받았다는 사실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3년 연속 불참키로 한 외교부는 미국이 3년 만에 이름을 올린 것을 두고 “환영한다”며 ‘유체이탈 화법’도 보였다.

바이든 행정부의 ‘인권 드라이브’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북한 인권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모호한 태도가 바이든 행정부와의 마찰을 유발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핵무기와 인권 중 하나를 택하는 접근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대북정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의견을 중시하겠다고는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최우선 대외 현안인 중국 견제에서 우리 정부가 한 발짝 물러선다면 이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바이든 행정부가 이슈 간 트레이드는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럴(트레이드) 가능성이 왜 없겠느냐”며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도 중국 견제에 우리 정부가 협력해야 대북정책에서 우리의 입장을 상당 부분 수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