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등을 앞세운 미국의 거센 공격에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급속도로 밀착하는 등 ‘반미전선’이 공고해지고 있다. 북한과 중국 최고지도자가 친서를 통해 ‘적대세력에 대한 단결’을 외치고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을 향해 ‘내정간섭 자제’를 요구하는 한목소리를 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동북아 순방 내내 북·중 인권을 문제 삼고 중국과는 공개적으로 충돌하면서 북·중·러가 빠르게 대항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비핵화 국면에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어지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려는 우리 정부의 구상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2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구두 친서를 주고받은 사실을 상세히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조선반도 정세와 국제관계 상황을 진지하게 연구·분석한 데 기초해 국방력 강화와 북남 관계, 조·미(북·미) 관계와 관련한 정책적 입장을 토의 결정했다”며 “적대세력들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 책동에 대처해 조·중 두 나라가 단결과 협력을 강화하자”고 강조했다. ‘적대세력’은 미국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공세를 ‘내정간섭’으로 규정하며 반발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중국 구이린에서 회담을 갖고 “다른 나라가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고 국내 문제에 간섭하는 것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사실상 미국을 겨냥했다.
인권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 있어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블링컨 장관도 지난 18일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을 설득해 비핵화하도록 하는 등 (북한 비핵화에서) 중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중국 역할론’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미국과 골이 깊어진 중국이 우방인 북한을 두둔하고, 중국이란 ‘뒷배’가 생긴 북한이 미국과 타협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동시에 남북 관계 개선에도 나서지 않게 되면 우리로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전을 보기 어려워진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북·중 인권 문제에 침묵하며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가 중국에 대한 취약성만 확대하고 실질적으로 비핵화 협상을 주도하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러나 유엔 인권위원회의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는 문제를 두고 “예년과 같이 결의안 컨센서스 채택에 동참할 예정”이라며 3년 연속 불참 방침을 확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라브로프 장관은 중국과 공유한 메시지를 들고 곧장 한국을 찾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수행차 2013년 11월 방한한 이후 8년 만이다.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한 방문이지만 시점상 대북정책 및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과 관련한 러·중의 입장 등이 주요하게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라브로프 장관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5일 회담 뒤 공식기자회견을 열 것으로 알려져 여기서 나올 양국의 메시지도 주목된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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