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첫 ‘유죄’… 양승태 판결 영향 주나

입력 2021-03-24 04:07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사법농단에 연루돼 재판을 받은 전현직 법관 중 첫 유죄 판결이다. 그동안 사법농단 관련 재판에선 6연속 무죄 선고가 나왔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부장판사 윤종섭)는 2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실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전 위원은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 전 실장, 이 전 위원은 2014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여러 법원에 제기된 행정소송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판사들의 전문분야연구회 중 하나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려 한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 모임을 와해시키려 한 것은 사법행정권 남용이라고 결론 내렸다.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 사건을 맡고 있는 재판부에 대한 개입과 헌법재판소 파견 판사에 대한 기밀수집 지시 등 이 전 위원이 받던 혐의도 인정됐다. 이 전 실장이 2016년 김수민·박선숙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맡은 재판부 심증 파악을 위해 당시 기획법관에게 지시한 것도 직권남용으로 판단됐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 등 사건 주범들과의 공모 혐의도 분명히 했다. 앞서 연속 무죄 판결이 나온 사법농단 관련 재판과 달리 이 전 실장과 이 전 위원은 사법농단의 ‘본류’로 분류돼 왔다. 재판부는 이 전 실장 행위에 대해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한 것이고, 재판 사무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중대한 범행”이라면서도 “법원행정처 구조상 이 전 실장의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이 전 위원에 대해서도 “각 범행은 중대하지만 범행을 주도한 건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과 임 전 차장”이라고 못 박았다.

함께 기소된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현 수원지법 성남지원 원로법관),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현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