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권한과 금융회사 책임을 강화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을 앞두고 금융권이 당국에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요구하고 나섰다. 규제 적용 범위가 광범위한 반면 세부 규정이 미비한 탓에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과 생명보험업계는 23일 김은경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과의 금소법 관련 비대면 화상 간담회에서 “금소법 ‘6대 판매규제’ 적용을 위해 기존 판매 절차를 재수립하고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에 일부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다.
간담회에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을 비롯한 10개 은행과 삼성생명 등 10개 생보사의 금융소비자보호 총괄책임자(CCO)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규정 등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금감원은 전했다.
25일 시행되는 금소법은 펀드와 변액보험 등 일부 상품에만 적용되던 6대 판매규제를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하는 것 등을 골자로 설계됐다. 금융사와 직원은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를 지켜야 하고 불공정영업행위와 부당권유, 허위·과장광고를 해서는 안 된다.
적합성 원칙은 고객에게 부적합한 상품을 권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이다. 고객이 “내 투자성향과 다른 상품을 소개해도 된다”고 했더라도 부적합 상품을 권유하면 법 위반이다. 적정성 원칙은 고객이 스스로 청약한 상품이 투자성향과 맞지 않을 때 이를 알리도록 한 규제다.
적합성·적정성 원칙을 위반하면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나머지 4가지 규제 위반에 대해서는 판매액의 최대 5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맞을 수 있다.
소비자는 기존에 투자자문 상품과 보험에만 적용되던 청약철회권을 모든 금융상품에 대해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불완전 판매에 대해선 소비자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위법계약해지권이 도입된다.
금융권은 금소법에 관한 임직원 교육과 함께 녹취 상담 대상 확대 등 시스템 구축에 분주한 모습이다. 신한금융그룹은 지난 17일 조용병 회장과 진옥동 신한은행장 등 그룹사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한 ‘소비자보호 강화 및 고객중심경영 선포식’을 개최하기도 했다. 하나금융그룹은 26일 정기주총에서 소비자리스크관리위원회 신설 방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업계는 금소법이 강력한 규제인 데 비해 세부 권리행사 요건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한다. 고객이 위법계약해지권을 행사하면서 보상을 요구했을 때 어느 선까지 응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감독 규정이 법 시행을 5영업일 앞두고 발표된 데다 세부 업무지침도 미비한 상황이다. 금융권에서는 “금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게 지난해 3월인데 1년 동안 뭘 했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날 은행·생보사 COO들은 “빠른 시간 안에 금소법이 정착되도록 감독당국과 금융업계의 긴밀한 협조체계 구축 등 소통을 강화해달라”고 요청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