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형 아이템’ 법제화를 담은 게임법 개정안이 여야의 합심과 이용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급물살을 타고 있다.
25일 국회와 업계 등에 따르면 확률형 아이템 법제화에 여야가 큰 틀에서 뜻을 모으며 게임법 개정안 통과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단순 확률 공개를 넘어 게임사를 감시하는 기구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도 등장했다. 어느 수준까지 게임사를 옥죌지가 국회 내 게임 전문가들의 최근 논읫거리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게임에서 일정금액을 투입했을 때 무작위적·우연적 확률에 따라 아이템이 지급되는 형태를 가리킨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국내 게임 이용자들의 불만은 극악의 확률에서 최상위 아이템을 뽑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pay to win(돈을 써야 이김)’이 게임의 핵심 골격이 되며 게임의 본질인 플레이의 즐거움보다 습관적으로 슬롯을 돌려 ‘S급 아이템’의 잭팟을 기대하는 요행이 게임의 메인 콘텐츠가 돼버렸다고 게이머들은 성토한다.
지난해 12월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표기 의무화 등을 담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일명 게임법) 전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 구성비율, 획득 확률 등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이 법안은 지난달 국회 상임위에 상정됐다. 개정안에는 등급분류 간소화, 경미한 내용수정 신고 면제, 중소게임사 지원, 비영리게임의 창작 활동 보장 등 국내 게임 산업의 풀뿌리 성장을 받치는 내용도 다수 들어가 있다. 전부 개정안이기 때문에 각계 진술인들의 의견을 두루 경청하는 공청회가 선행된 뒤 소위 심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일부 개정안으로 힘을 실었다. 하 의원은 게이머들의 ‘알 권리’를 증진한다는 취지로 문화체육관광부에 게임물 이용자 권익보호위원회를 설치하고 게임사는 별도 게임물이용자위원회를 두도록 의무화하는 ‘확률조작 국민감시법’을 내놓았다. 하 의원실 관계자는 “방송법상 시청자위원회가 있듯 게임사도 이용자 권익 보호를 위한 별도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해 게임 콘텐츠를 국민이 직접 감시 및 시정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면서 “(위원회는) 민간 자율 기구지만 조사권을 부여해 효력을 상당히 올렸다”고 설명했다. 유동수 민주당 의원 또한 논란이 되고 있는 ‘컴플리트 가챠’(확률형 아이템으로 뽑은 아이템을 모아 다른 아이템을 얻는 방식)를 아예 금지하는 법안을 최근 내놓았다.
전부 개정안을 비롯한 확률형 아이템 관련 모든 법안들은 국회 상임위에서 병합 심사될 예정이다. 국회는 확률형 아이템의 법제화가 여론의 지지를 얻으며 탄력을 받았지만 아직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다는 판단하에 시간을 두고 충분히 법안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한때 확률형 아이템이 들어간 게임 모두를 아예 도박으로 규정해 사행물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뻗어 나왔으나 국회에는 닿진 않았다. 확률형 아이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를 게임사가 악용한 결과라는 평가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PC 온라인게임을 개발·운영 중인 한 게임사 관계자는 “게임에서 랜덤 요인은 재미를 줄 수 있는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면서 “과금으로 뽑는 확률형 아이템에 극악의 확률을 적용해 ‘잭팟’이 터지듯 게임을 만드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넥슨 PC 온라인게임 ‘메이플스토리’의 확률형 아이템 문제에 대응 중인 ‘게이머 총대’(닉네임 엔쵸군)는 국민일보와 전화통화에서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에서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인”이라면서 “다만 완벽히 확률이 공개되어야 하는 전제 조건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지난달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대에 오락실을 경험한 386세대가 근래 60대에 접어들면서 게임을 즐기는 세대의 폭이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질병코드 도입을 추진할 당시 국민이 먼저 발 벗고 국내 도입을 적극 반대하며 게임에 대한 사뭇 달라진 위상을 보여줬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은 “게임사들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이템 획득 확률을 극악으로 낮추고 합성 강화 방식을 도입하며 이용자들의 불만을 가중하고 있다”면서 “게임이 국민의 문화생활로 자리 잡고있는 상황에서 이런 논란은 인식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게임 산업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예전처럼 망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