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이창동도 담긴다… 90년 영화 역사 한 자리에

입력 2021-03-24 04:06
9월 3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중심부에 개관하는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 내 전시실의 일부. 영화 ‘ET’ ‘스타워즈’ ‘에일리언’에 사용된 모형이 전시돼 있다. 아카데미박물관재단 제공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의 사명은 전통적 담론에 도전하고, 영화사에 남은 문제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새로운 담화가 이뤄지는 공간을 만들어 영화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하겠습니다.”(디렉터 겸 대표 빌 크레이머)

오는 9월 3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관하는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 버추얼 투어 및 기자간담회가 23일 오전 온라인으로 열렸다. 나라 별로 시간대를 나눠 행사를 진행하는데 이날은 한국 차례였다. 박물관은 미국 내 가장 큰 규모의 영화 센터다. 사진 자료 1250만장, 영화·비디오 작품 25만점, 대본 9만개, 포스터 6만6500장, 제작 예술품 13만8000점 이상이 전시된다. 한국의 봉준호, 이창동, 고(故) 김기덕 감독의 전시와 이소룡, 미야자키 하야오 등 아시아 영화인 프로그램도 준비된다.

“영화의 사회적 영향력 보여줄 것”

박물관 외관 풍경.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약 2만8000㎡ 규모의 박물관은 1939년 지은 메이 컴퍼니 빌딩을 리모델링한 사반 빌딩과 새로 건축한 유리 콘크리트 돔형 스피어 빌딩으로 이뤄졌다. 아카데미박물관재단 제공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은 1917년 이후 아카데미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하는 장소로, 기념비적 순간은 물론 비판적 사실까지 망라한 영화의 모든 역사를 담는다. 예를 들어, 박물관 프로그램 중 하나인 ‘오스카®체험’에는 백인 남성 중심주의 오명을 쓰고 있는 아카데미의 불편한 역사 등이 모두 기록된다.

크레이머는 “영화는 역사적 사건을 담으며 사회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쳐왔다. 박물관은 영화의 사회적 영향력을 강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물관 건립은 아카데미의 숙원사업이었다”며 “지난 90년간 아카데미 관련 개인 소장품까지 모두 모아 영화의 역사를 전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박물관이 수집한 자료에는 의상과 소품, 헤어 스타일링 등의 자료까지 포함된다.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의 루비 슬리퍼나 ‘에일리언’의 괴물 모형 등도 만날 수 있다.

최고 예술 프로그램 책임자인 재클린 스튜어트는 “관람객은 여러 프로그램을 탐험하면서 영화가 대화를 시작하게 해주고, 공감대를 넓혀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영화사에 대한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박물관 이사회 부의장인 이미경 CJ 그룹 부회장도 영상으로 축사를 전했다. 그는 “영화에 대한 전 세계의 관점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박물관”이라며 “여러분이 어디에서 왔든 박물관은 당신과 영화를 가깝게 연결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풍성한 볼거리… 시작은 여성 영화인

박물관 내 또다른 전시실. 아카데미박물관재단 제공

이날 화상을 통해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약 2만8000㎡ 크기의 박물관이 공개됐다. 1939년 건축된 메이 컴퍼니 빌딩을 확장한 사반 빌딩과 유리 재질의 원형 건물인 스피어 빌딩으로 구성됐다. 사반 빌딩은 몰입형 상설전과 특별전 갤러리, 복원 스튜디오, 특별 이벤트 공간, 카페와 상점을 포함한 7개 층으로 이뤄졌다. 스피어 빌딩은 1000석 규모의 상영관과 옥상 돌비 패밀리 테라스를 갖췄다.

핵심은 3개 층에 걸쳐있는 ‘영화의 이야기’ 전이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영화 제작의 예술성과 과학성을 탐구하는 공간이다. 공상과학 및 판타지 영화 속 캐릭터 탄생 과정,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 등이 담겨 있다. 이소룡, 엠마뉴엘 치보 루베츠키등 역사적 영화인과, ‘시민 케인’ ‘리얼 우먼 해브 커브스’ 등 상징적 영화의 순간도 전시된다.

박물관은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개최되는 다음 달 25일에 맞춰 22일부터 버추얼 프로그램을 공개한다. 시작은 ‘오스카의 유리 천장 깨기’다. 오스카의 역사적 사건을 이뤄낸 여성 영화인들의 이야기로, 소피아 로렌, 우피 골드버그, 마른린 마틴, 버피 생 마리가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스튜어트는 “영화는 교육의 기능을 수행한다”며 “혐오와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것”이라고 했다.

특별 개관전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무대다.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을 기리는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회고전이다. 일본 외부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을 포함해 원본 이미지 보드, 캐릭터 디자인, 스토리보드 등을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의 60여 년 영화 여정을 풀어낸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