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은 패션이다] 예능의 벌칙은 함께 웃으며 즐기고 더 친해지자는 것

입력 2021-03-27 04:07
KBS 대표 예능 ‘1박2일’의 장면. 시즌1 중 한 장면. KBS 제공

명동 한복판에 예술극장이 있다. 3월의 무대는 ‘파우스트 엔딩’이다. 배우 김성녀씨는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열정이 활화산이다. 지난 17일 SBS 심야뉴스에 출연해서 인터뷰도 했다. “노력하면서 방황한다는 대사가 있어요. 파우스트가 헛된 짓을 했어도 신한테 구원을 받는데 파우스트 엔딩에선 달라요. 그건 정말 공평하지가 않다, 그래서 책임을 져야 하는 죄업은 내가 안고 구원을 마다한 채 지옥으로 가겠다고 얘기를 하거든요.”

노력, 방황, 헛된 짓, 신, 구원, 공평, 책임, 그리고 지옥. 아마 이 단어들을 고루 써서 작문을 한다면 꽤 심오한 철학 에세이가 나옴직도 하다.

예전에 젊은 교사들과 대화하던 중에 요상한 질문이 나왔다. “교사라는 직업은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만인만색의 교사를 어떻게 일반화하나. 그래서 우리끼리만 정량평가로 답을 내보기로 했다. 한 학생을 재미있게 하면 1점, 즐겁게 하면 2점, 기쁘게 하면 3점, 감동을 주면 4점이다. 학생 수에 따라 곱하고 더하면 된다. 그 반대로 한 사람을 지루하게 하면 1점, 괴롭히면 2점, 슬프게 만들면 3점, 상처를 주면 4점을 뺀다. 역시 숫자에 따라 곱하고 그걸 총점에서 제한다. 교사들이 각자 근무한 연수와 제자의 수를 근거로 점수를 냈는데 대부분이 마이너스였다. 지루한 수업이라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나니 천국의 문이 그만큼 좁아졌다.

이제 나의 교실로 들어간다. 이런 문턱에선 항상 보헤미안 랩소디의 첫 가사를 상기한다. ‘이건 실제의 삶인가 그냥 환상일 뿐인가’(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파우스트 엔딩’의 여운 때문인지 먼저 떠오른 건 영화 ‘신과 함께’다. 이 영화의 제작자(원동연)는 내가 처음 중학교 국어 교사를 할 당시 애제자다. (성공하면 애제자! 실패하면 그런 애도 있었나? 그건 아니고^^) 어쨌든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다. 제자가 잘됐을 때 교사는 행복하다. 반대로 제자가 죄를 지으면 교사도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범죄 혐의를 받는 옛 제자가 눈빛으로 “선생님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라며 카메라를 향해 묻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겐 이 영화의 부제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1편이 ‘죄와 벌’ 2편이 ‘인과 연’이다.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는 말이 실감나지 않는가.

1박2일 시즌2~3에 출연한 차태현. KBS 제공

두 번째 교실엔 탤런트 차태현이 앉아있다. 그는 ‘신과 함께’ 1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와도 인연도 각별하다. PD시절 서울예전(現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작품 분석’이라는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차태현은 단 한 번의 지각, 결석도 없는 모범생이었다. 작품을 분석하는 최후의 목표는 스스로 작품이 되는 것이다. 수업시간에도 말한 적이 있다. 작품이 되려면 논밭(산전수전)과 사찰(우여곡절), 그리고 숙소(파란만장)를 거쳐야 한다. 그는 배우다. 배우는 끝까지 배우는 사람이다. 연기도 배우고 처세도 배운다. 어느 자리에서 배우끼리 다투는 걸 엿들은 적이 있다. “너는 위아래도 없니?” 시작은 이 정도였는데 음역이 점점 높아지더니 급기야 이런 말까지 나왔다. “넌 무대 밖에서도 연기하니?” 아마 탤런트였다면 “너는 카메라 밖에서도 연기하니?” 이렇게 표현했을 거다. 창의가 뛰어나도 예의가 부족하면 이런 곤경을 만날 수 있다.

차태현은 여러 프로그램을 섭렵했다. 섭렵(涉獵)이란 물을 건너 찾아다닌다는 뜻이다. 살다 보면 물 만날 때도 있고 물 먹을 때도 있다. 물에 젖기도 하고 물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물이 편안해지면 그땐 허둥댈 일도 줄어든다. 가끔은 연못에서 꽃으로 피기도 한다.

1박2일을 대중적 예능 반열에 올린 나영석 PD. KBS 제공

이제 본격적으로 예능 여행을 떠나보자. 차태현의 예능 대표작은 단연 ‘1박2일’이다. 처음 이 여행을 기획하고 연출한 PD는 이명한, 그리고 반석에 올린 PD는 나영석이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는 지금 각종 매체에 두 사람의 연봉이 공개됐다. 입이 쩍 벌어지는 금액이다. 본인들도 밝히기를 원했을까. 만약 이 두 사람이 계속 KBS에 남아있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액수다. 하지만 누가 일부러 밀어준 게 아니고 자신들이 직접 두드리고 열었다는 점에서 공평성 시비는 나올 것 같지 않다.

내가 초창기의 JTBC에서 일할 때 개인적인 일로 나 PD에게 전화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팀 회의 중이었는데 옆의 간부가 액정화면에 내 이름이 뜬 걸 보고 “너 거기 가냐” 의심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웃으며 “자주 전화 주세요”라고 내게 말했지만 실은 그것도 예능의 연장이었다. 아무튼 그는 KBS를 떠나 CJ ENM으로 옮겼고 성공했다. 그의 삶과 연출 세계에 대해서는 따로 횟수를 정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그만큼 방대하고 영향력도 크기 때문이다. 나와 그는 입학 연도 상으로 딱 20년 차이다. ‘10년만 젊었어도’가 아니라 ‘20년만 젊었어도’기 때문에 딱히 서운(?)할 건 없다. 그땐 그랬고 지금은 이렇기 때문이다.(That was then, this is now)

이명한(tvN 본부장)이 나영석에게 ‘1박2일’을 넘겼다면 1990년대 초반 MBC 예능에선 송창의 PD가 나에게 ‘일밤’(일요일 일요일 밤에) 배턴을 인계했다. 프로그램엔 낳은 정, 기른 정이 있는데 프로가 잘 되면 친부모가 여럿 나타나기도 한다. 그 반대의 경우엔 ‘누가 우리 부모를 찾아주세요’가 될 법도한데 그런 일은 없다. 찾아서 딱히 도움 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시청률은 누구에게 훈장이고 누구에겐 낙인이다. 자료를 보니 1993년 당시 ‘일요일 일요일 밤에’ 연평균시청률은 28.7%였다. 지금 그 시간에 방송되는 ‘복면가왕’의 지난주(3월 21일) 시청률이 7.7%(닐슨코리아)이니까 4분의 1로 줄어든 수치다. 수치에 목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솔직히 언행일치란 게 참 어렵다. 하기야 직업병이란 게 있긴 한 모양이다. 웃기려고 하는 말은 아닌데 예전에 시청을 지나갈 때 시청률을 떠올린 적도 있을 정도다.

이제 지난주 ‘1박2일’의 성적표를 보자. 같은 기관에서 조사한 시청률은 11.2%다. ‘복면가왕’을 앞질렀다. 사실 SBS가 생기기 전엔 늘 KBS와 MBC가 엎치락뒤치락했다. 내가 ‘일밤’을 맡았을 때 막 개국한 SBS는 그 시간에 예능 대신 드라마를 방송했다. 그 제목이 ‘은하수를 아시나요’였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푸른 하늘 은하수’ 시절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1박2일 시즌1에 출연한 이수근, 강호동, 이승기(왼쪽부터). KBS 제공

‘1박2일’의 핵심가치는 복불복이다. 순우리말이라는 설도 있지만 ‘복이 오거나 안 오거나’ 라는 뜻의 한자어(福不福)로 많이 쓰인다. 이 말에서 야외취침의 냉기가 느껴지거나 까나리액젓의 냄새를 맡는다면 그건 다 ‘1박2일’ 후유증이다. 벌칙으로 주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게임이다. 약속과 규칙이 있다. 반칙은 허용되지 않는다. 가상한 점은 엉터리 게임일지언정 이긴 자에게 상을, 진 자에게 벌을 주자는데 합의하고 그걸 이행한다는 점이다. 내가 예전에 기획한 프로그램 중에 ‘테마게임’이라는 게 있었다. 즐겁게 살아보자는 ‘테마’와 재미있게 놀아보자는 ‘게임’이 결합한 제목이다. 예능에서 벌칙을 주는 건 누구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다. 함께 웃으며 즐기자, 더 친해지자는 게 궁극의 목표다.

‘복면가왕’을 보면 권력의 생리를 짐작할 수 있다. 누가 먼저 복면을 벗는가. 판정단의 점수가 낮은 자부터 복면을 벗는다. 만약에 누군가 점수가 낮아서 복면을 벗고 자기를 밝혀야 하는데 그냥 화를 내며 퇴장해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복면가왕’의 출연자들은 무대에 서기 전 게임의 룰에 동의하고 그 규정을 지킴으로써 예능 민주주의에 승복하는 것이다.

예능PD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여의치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악마의 편집을 했으니 말 꺼내기도 쉽지 않을 거다. 나는 예능의 세계에 악인은 없고 악역이 있다고 최면을 건다. 예능은 ‘신과 함께’ 하는 게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하는 작업이다. 진짜로 인생을 편집할 수 있다면 그땐 천사의 편집을 하고 싶다.

주철환 프로듀서 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