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30)씨의 의사자격 논란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교육부가 전날 부산대로부터 보고받은 ‘조씨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입학 관련 조치 계획’을 23일 검토에 착수해 이번 주 중으로 입장을 정리키로 했기 때문이다. 조씨의 의사자격은 유지될 수 있을까.
정부 판단에 영향을 끼칠 변수 중 첫 번째는 여론이다. 교육부가 이번 사안을 들여다보게 된 것도 여론에 떠밀린 모양새다. 조씨가 고려대와 부산대 의전원에 제출한 입학서류가 가짜라는 법원 판결이 나온 시점은 지난해 12월 23일이었다. 대학들에 입학 취소를 요구해야 자연스러운 모양새였지만 교육부는 “입학 취소는 대학 권한”이란 입장을 유지했다. 한진그룹 일가 갑질 파문 당시 20년 전 입학서류까지 뒤져 조원태 사장의 입학 취소를 통보하는 기민함을 보였던 것과는 달랐다. ‘권력자 자녀 특혜’ ‘입시 공정성 훼손’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교육부의 첫 입장은 지난 1월 27일에야 나왔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나와 “법률 검토 중”이란 입장을 밝혔는데 라디오 진행자의 돌발 질문에 응답하는 방식이었다. 조씨가 한국전력공사 산하 한일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교육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실제 움직임은 지난 8일 시작됐다. 교육부가 공문을 통해 부산대에 조씨 부정입학 의혹 조치 계획을 3월 22일까지 보고토록 한 것이다. 교육부는 이 내용조차 ‘쉬쉬’하다 지난 19일 국회에서 야당과의 입씨름 과정에서 공개했다.
왜 3월 8일에 움직였을까. ‘LH 사태’가 촉발된 시점이 지난 2일이었다. 국민적 공분이 일었고 ‘문재인정부가 과연 과거 정부들보다 공정한가’란 비판이 확산하던 시점과 맞물려 있다. 입시 공정성은 부동산 못지않은 폭발력을 갖고 있어 더 이상 뭉갤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부동산 정책 실패 등으로 촉발된 불공정 논란에 ‘조씨 의사자격 논란’이 기름을 부을 수 있어 마냥 시간을 벌어주며 비판 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다리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교육부가 조씨에게 시간을 벌어주려고 노력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조 전 장관의 열성 지지층이 범여권 지지층과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이다. 조씨 의사자격 박탈 여부는 유 부총리로선 정치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일 수 있는 만큼 교육부가 고민하고 있을 논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생산할 수 있는지가 조씨 의사자격 유지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입학 취소는 조씨 인생에 돌이키기 어려운 피해”라며 대법원 판결까지 지켜보자는 논리를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형평성 논란이 걸림돌이다. 과거 유사 사례를 보면 대법원 판결은커녕 1심까지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교육부나 대학 조사 단계에서 부정이 드러나면 입학 취소 처분을 내렸고 “억울하면 소송을 통해 구제받으라”는 식으로 대응해왔다.
만약 이런 논리를 내세워 처분을 미룬다면 선례를 만들게 된다. 앞으로 유사 사례 발생 시 대법원 판결까지 처분을 미뤄줘야 한다. 다른 측면에서 자칫 ‘돌이키기 어려운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 부정 입시 의혹 대상자가 아닌 정직하게 노력한 이가 돌이키기 어려운 피해를 본다.
예를 들어 대학 조사에서 부정 입학이 드러난 A가 있다. B는 A에게 밀린 차점자로 다른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부정 입학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은 B에게 선택의 기회를 줘 빨리 구제하는 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B에겐 되돌리기 어려운 피해로 돌아온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오던 것처럼 A를 입학 취소한 뒤 억울하면 소송으로 구제받도록 하고 일단 B에게 기회를 주는 게 타당하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제출된 입학서류가 당락에 영향을 끼쳤는지 모호하다”는 논리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허위 입학서류 제출만으로 입학을 취소토록 의무화한 현행법을 위반하는 행위다. 적어도 조씨가 고교 때 작성했다는 병리학회 제출 논문이 부당한 저자 표기 등으로 논문 취소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허위서류 제출 사실 자체를 뒤집기 어려워 보인다는 관측이 많다.
문재인정부 교육 정책에 끼칠 악영향도 고려할 요소다. 특히 고교학점제와 고교체제 개편 등 중등교육 혁신 방안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향력을 줄여야 하는 민감한 정책이다. 입시가 공정할 것이란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추진 동력이 된다. 교육부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수능 아니어도 입시는 공정하다”고 납득시켜야 하는 처지다. 조씨를 위해 시간을 벌어주는 결정을 내릴 경우 ‘권력자 자녀는 앞으로도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봐줄 것’이란 인식을 교육부 스스로 강화시켰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