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코로나 속 가속화된 탈교회 현상… 기독교 쇄신·도약의 기회로

입력 2021-03-25 03:06

코로나 이전부터 교회 내부에서는 가나안 성도의 급증과 탈 교회 조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예배가 장기화하고, 방역문제와 관련해 교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높아지면서 코로나 이후 교회 위상이 어떻게 될지는 주요한 관심사가 됐다. 미국의 교회성장학자 톰 레이너는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교회에 돌아오지 않는 이들이 20~30%가 되리라 전망한다. 감염병 재난이라는 외부 환경으로 가속화되긴 했지만, 탈교회와 가나안 교인 현상은 이미 진행돼오고 있었다.

한국교회는 비서구권 기독교 중에서 가장 충실하게 서구교회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짧은 기독교 역사에도 지난 세기에 폭발적 교회 성장을 이룩했을 뿐 아니라, 양질의 풍부한 신학적 역량과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할 정도의 자원이 있다. 또 서구교회가 과거 기독교가 사회 체제의 중심이었던 크리스텐덤(Christendom)에서 멀어진 것처럼, 한국교회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는 서구와 같이 기독교가 국교이거나 사회를 대표하는 다수 종교였던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사에서 교회는 특수한 지위를 누리며 다른 종교들에 비교해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흔적은 많다. 서구 문물과 기독교는 거의 동시에 한국 사회에 도래했으며, 전통 유교 질서가 붕괴하면서 식민통치와 공산화의 위협을 물리치고 근대화를 이루는 데 기독교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기독교는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 깊은 흔적과 영향력을 행사한 근대화의 동반자였다. 현재 한국 기독교가 경험하는 위기는 서구의 포스트 크리스텐덤과는 결이 다른 탈 교회적(de-churched 또는 post-churched)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합해 보인다. 서구 포스트 크리스텐덤은 이미 근세 계몽주의와 인본주의 사상이 300년 이상 의식의 저변을 잠식하며 기독교 신앙의 기반을 전복해온 결과라면, 현재 한국 사회의 기독교에 대한 반작용은 일차적으로는 한국교회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피터 버거는 특정 사회 속에서 특정한 종교가 그 사회의 문화와 공감하며 지배적 호소력을 갖는 현상을 ‘타당성 구조’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그동안 한국의 현대 역사에서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고 확산할 수 있었던 경로는 무엇일까. 필자는 크게 세 가지의 타당성 구조가 한국 현대사에서 기독교 선교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고 본다.

첫째 ‘반공의 타당성 구조’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삶은 수시로 안보 위협이라는 트라우마 가운데 놓여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를 든든히 지켜주는 우방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의존은 커졌고, 미국을 상징하는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우호적 인식 또한 자연스럽게 형성됐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같은 안보 논리가 전쟁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남한의 국력이 북한을 압도하는 현실에서 과거와 같은 효용성을 발휘하기 힘들다.

둘째 ‘경제성장의 타당성 구조’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물결에서 기독교는 충실한 동반자가 됐다. 천주교와 달리 기독교는 국가의 산아제한정책에 적극 협력했고, 긍정적 사고방식과 교회 성장주의를 통해 이러한 시대정신을 반영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혹자는 20세기가 생산적 활동을 추구하던 ‘엔도르핀 호르몬 시대’라면, 21세기는 내면적 성찰과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세로토닌 호르몬 시대’라고 한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결단 열정 헌신 등 행동주의적 영성에 익숙한 나머지, 안식 성찰 묵상 절제 등과 같은 새로운 영성의 표현들에는 충분히 준비되지 못했다.

셋째 ‘문화적 선망의 타당성 구조’다. 기독교는 해방 이후 구원자 역할을 했던 미국 문화의 통로로서 세련되고 동경할만한 신문물을 상징했다. 교회는 보수적이고 엄격했던 권위주의 시절에 문화적 숨통을 트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여름성경학교와 문학의 밤, 성탄절 등은 당시 젊은이들이 감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던 거의 유일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제 한국은 미국 문화를 선망하는 가운데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문화를 생산하고 창조하는 선구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이제 교회가 일반 사회에 비해 문화적으로 선진적 코드를 지녔거나 문화적 역량을 표현하는데 유리한 환경이 되지 못한다.

한국교회가 성장한 배경에 신앙 선배들의 헌신과 이 나라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은총이 중심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환경을 둘러싼 객관적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다면, 과거의 열심을 재다짐하고 반복하는 것으로는 지금의 탈교회적 위기에 선교적 대응은 힘들다.

오늘날의 타당성 구조는 무엇일까. 최근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고려할 때, 자기 존중과 환대, 일상성, 취향의 공동체 등이 떠오른다. 이에 대해 기독교는 어떻게 대답하고 적절한 사역의 구조를 갖출 것인가. 위기는 우리가 신앙의 진정성을 재고하고 복음을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계기로 작동할 수 있다.

종교는 사회적 변동에 따라 쇠퇴와 성장을 반복하게 된다. 종교의 재활력을 위해 필요한 첫걸음은 본래의 핵심 가치와 의례, 상징을 재해석하고 이를 구현할 새로운 구조를 실험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아직 젊고 새로운 선교적 실험을 통해 재활력화를 도모할만한 여력이 충분하다.

근래 서구의 ‘선교적 교회’나 ‘교회의 신선한 표현’ 등은 기독교가 주변부로 밀려난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신앙 공동체 운동들이다. 현재 우리의 상황은 세상으로 보냄 받은, 흩어진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였던 초기 기독교와 유사해 보인다. 그것은 오래된 진리를 새롭게 표현해야 하는 과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김선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 교수

(이 글은 지난 17일 제2회 서종포럼에서 발표한 내용 일부를 요약 수정한 것입니다.)

[탈교회와 가나안 교인 현상에 대한 선교적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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