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시대 쉽고 편한 e세상… 누군가엔 힘든 세상

입력 2021-03-27 04:02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영업자 전모(61)씨는 최근 서울역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주문하는데 10분 넘게 걸렸다. 키오스크(터치스크린 방식의 무인단말기) 사용법이 낯선 탓이었다.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라”는 점원 안내에 뒷걸음치듯이 매장 한쪽 키오스크 앞에 선 전씨. 키오스크 사용법에 익숙지 않아 메뉴를 선택한 뒤 카드 결제창으로 화면을 넘기지 못해 진땀을 흘렸다. 전씨는 26일 “먹으려던 햄버거를 찾는데도 한참이 걸렸지만 메뉴를 고른 이후 ‘장바구니’를 선택해 다시 결제창으로 넘겨야 하는 사실을 몰랐다. 결제 안내 문구를 한참 기다리다 결국 뒤에 줄을 서 있던 한 청년의 도움으로 주문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며 “당황하다 보니 대면 주문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 했다. 스마트폰조차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는 키오스크로 주문할 엄두도 못 낼 것 같다”고 말했다.

“주문 실패” 공감 폭발한 키오스크 실패담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이른바 ‘키오스크 실패담’이 공유되고 있다. 중장년층이 식당 등에서 키오스크를 이용하려다 실패했다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한 네티즌은 트위터에 “엄마가 햄버거를 먹고 싶어 한 햄버거 가게에서 주문하려고 했는데, 키오스크를 잘 못 다뤄 20분 동안 헤매다 그냥 집에 돌아왔다고 하더라”며 “엄마가 이런 말을 하다가 울었다. ‘엄마 이제 끝났다’고 울었다”고 전했다. 이 사연은 트위터에서 1만7000회 넘게 공유되며 화제가 됐다.

이런 ‘실패담’은 중장년층 사이에선 향후 점점 더 늘어날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기존의 대면 서비스가 ‘비대면 서비스’로 대체되고 있어서다. 음식이나 식료품 배달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이 생활의 필수재가 되었는가 하면, 은행 등의 금융업무, 정부의 행정서비스도 대면 방식을 줄이고 키오스크를 통한 비대면 방식으로 대체되는 추세다.

하지만 편리함과 속도 등에서 이점이 있는 이런 비대면 서비스는 고령층이나 장애인, 저소득층에게는 오히려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장벽이 되고 있다. 모바일기기나 키오스크 등에 익숙하지 않은 계층은 아예 서비스 이용마저 포기해버리는 ‘디지털 소외’가 발생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에서 디지털 취약계층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포용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남의 일 아니다… 소외되는 중장년층

중장년층은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와 같은 디지털 서비스 보급 속도를 대부분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19년 인터넷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60대와 70대 이상의 인터넷 쇼핑 이용률은 각각 20.8%, 15.4%에 불과하다. 전체 연령대에서 평균 61.0%가 인터넷 쇼핑 이용 경험이 있었지만, 60대 이상은 평균의 3분의 1, 70대 이상은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20대(96.9%), 30대(92.4%)와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인터넷뱅킹 이용률 역시 60대는 26.9%, 70대 이상은 6.3%로 매우 낮았다. 반면, 20대와 30대는 각각 88.6%, 93.8%였다.


전국 1만5000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정보화 수준(접근, 역량, 활용)을 조사한 결과(일반 국민 100% 기준)에서도 고령층·장애인 등의 취약계층의 정보화 수준은 평균 69.9%에 불과했다. 역량 수준도 60.2%, 활용 수준은 68.8%로 낮았다. 특히 고령층(만 55세 이상)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이 64.3%로 가장 낮았고, 디지털 기기 이용 역량 수준은 51.6%로 일반 국민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문제는 고령층이 키오스크와 같은 비대면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두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어 향후 디지털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경기연구원 배영임 연구위원이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디지털 소외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미래 디지털 소외계층이 될 것이 두렵다’는 응답자는 36.4%로 나타났다. ‘현재 디지털 소외계층이라고 생각한다’(12.1%) 응답자의 3배 이상이었다.

디지털 소외를 겪는 취약계층은 방역에서도 사각지대로 몰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로 식당 등의 업장 출입 시 QR코드 제시가 생활화하고 있는데, 고령층에는 QR코드가 생소할뿐더러 QR코드를 발급받기 위해 거치는 개인정보 인증절차도 까다롭다. 고령층은 출입명부를 수기로 작성할 수 있는 업장만 찾아다니거나 아예 외출을 자제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 김나정 조사관은 “마스크 앱 접근이 어려운 고령층은 방역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해 조성된 환경이 정보취약계층에게는 더욱 큰 장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격차 해소는 복지 정책”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디지털 정보격차와 양극화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누구나 디지털 기술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포용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제언한다. 배 연구위원은 “누구나 디지털 소외계층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예방하기 위해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정부는 디지털 소외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디지털 포용 추진계획’을 내놓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디지털 취약계층에 기기를 지원하고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디지털 기기 및 콘텐츠 활용법을 교육하는 ‘디지털 배움터’ 사업을 진행하는 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디지털 포용 정책을 발표하면서 디지털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키오스크 사용법을 체험해볼 수 있게 하고, 공급업체들이 사용법(UI)을 쉽게 개선하도록 지원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런 정책이 일회성 사업으로 끝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제화 필요성도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지난 1월 디지털포용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법안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법안은 “디지털 포용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본 틀을 마련해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통합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김 조사관은 “정보격차 해소는 복지 차원에서 다가갈 필요가 있다”며 “맞춤형 교육과 기술적 지원뿐만 아니라 동기부여, 격려 등의 정서적·사회적 지지와 보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