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개는 피곤한 개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은 피곤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개는 행복하기 위해 피곤함을 선택한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는 애견인이 많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 나만 빼고 모든 사람이 개를 키우고 있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많다. 대문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평균 5마리의 개와 눈이 마주칠 정도다. 잠시 공원에 앉아서 쉴 때면 사람이 반, 개가 반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개들은 대부분 달리고 있다. 몸집이 크든 작든 주인 옆에 붙어서 열심히 달린다. 단 하나의 개도 힘들어 보이지 않고 행복해 보인다.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서인지 표정에는 자신감도 가득하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걷기와 달리기를 통해 활력을 얻는다.
하지만 슬프게도 운동을 사랑하는 이 도시에서 앞으로는 저녁에 운동하기가 어려워졌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무섭게 늘면서 오후 8시 이후로는 외출이 금지된 것이다. 모두가 퇴근하기 무섭게 마트로 달려가서 먹거리를 구매하고 재빨리 집으로 돌아간다. 길거리는 고요하다. 나 혼자만 세상에 남겨진 건가 싶을 정도로 까맣고 고요하다.
이때 고요함을 깨뜨리는 소리가 들린다. 밖에서 개가 짖는다. 사람의 발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계속돼 창밖을 내다본다.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개를 산책시키고 있다. 불법을 저지르는 건가 싶지만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당당하고 여유롭다. 그렇다. 헝가리 정부에서 오후 8시 이후 외출을 금지시킨 건 맞지만 예외적으로 반려견 산책을 위한 외출은 시간 제약 없이 가능하도록 해준 것이다.
나는 어릴 때 꿈이 수의사였을 정도로 개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당연히 아무도 외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나와는 달리 부다페스트의 모든 사람은 당연히 반려견 산책은 가능해야 한다고 여긴 것이다. 오늘도 부다페스트의 섬세함에 박수를 보내며 무지하고 무심했던 나를 반성한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