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광동 (6) 귀국 후 다닐 교회 찾다 꿈에서 본 성전 데자뷔

입력 2021-03-24 03:06
김광동 대표가 외교관 시절인 1992년 처음 등록해 지금까지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서울 온누리교회 서빙고성전 전경.

1991년 부활절에 성령을 체험한 뒤로 나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됐다. 주일 예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사람이 주일 성수는 물론이고 수요예배, 금요 철야예배 등 예배란 예배는 다 참석했다. 업무 전 30분간 말씀을 읽고 사역지를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대사관 동료들과 기도 모임도 했다. 수입이 생기면 십일조부터 철저하게 떼어 놓는 것도 습관이 됐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상이 달라졌다며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주 업무인 외교관으로서 듣기 좋은 평가였다.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신 29:9)는 말씀이 내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했다.

92년 8월 의전 심의관으로 부름을 받아 본국으로 귀임했다. 귀국할 때부터 내 관심사는 교회였다. 초신자로서 배우고 싶은 것이 무척 많았다. 서울의 여러 교회를 다니며 예배를 드려 봤지만, 브뤼셀에서 다닌 교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서 그런지 낯설게 느껴지곤 했다.

하루는 꿈을 꾸다 어떤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가 계단을 따라 돌고 돌아서 올라가 큰 성전에 들어갔다. 전면에 붉은 벽돌 벽이 보이고, 그 앞에 각진 턱으로 빙 둘러싸인 강대상이 있었다. 성전 뒤편 양측에 선 굵은 기둥이 높은 천장까지 이어져 있고, 2층 난간이 보였다. 잠에서 깬 나는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며 “내가 꿈에서도 교회를 찾다니”하고 피식 웃었다.

그 주일에는 서울 용산구 온누리교회를 방문하기로 돼 있었다. 예배 시간에 맞추어 도착해 큰 유리문을 열고 로비로 들어가 계단을 따라 돌고 돌아 올라가니 넓은 성전이 나왔다. 열린 문을 들어서는 순간 데자뷔가 느껴졌다. 붉은 벽돌 벽에 각진 턱이 둘러친 강대상, 뒤편의 흰 기둥과 2층 예배 공간이 꿈에서 본 그대로였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곳을 찾았다. 아내는 하용조 목사님 말씀에 은혜가 넘친다며 곧바로 등록하자고 했다. 더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예배가 끝난 뒤 바로 교인 등록 절차를 밟았다. 일주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교회를 드나들었다. 새벽 기도회를 시작으로 월요 치유 집회, 화요 성령 집회, 수요 예배, 목요 경배와 찬양 집회, 금요 철야 예배 등 가능한 모든 예배에 참석했고, 토요일 새벽에는 하 목사님이 소그룹으로 인도하는 성경공부 모임 ‘토성회’에 나갔다.

당시 온누리교회는 ‘2000/1만 비전’을 선포하고 추진하고 있었다. 하 목사님은 설교 때마다 2010년까지 2000명 선교사와 1만명 평신도 사역자를 세울 것을 강조했다. 4주간 새가족 교육을 받고 내 교적 번호를 보니 성도 수가 이제 겨우 4000명을 넘었다. 그런데도 2000명 선교사를 파송하겠다고 하니 머리로는 말도 안 되는 목표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내가 1만 사역자로 파송 받게 될 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