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것을 계기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에서 자체 조사가 이뤄지고 있으나 조사결과에 대한 불신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지나치게 적은 인원이 적발됐거나 조사 범위가 한정적이어서 시민들의 의혹을 해소하기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에 시민들이 등기부등본을 대조하는 등 직접 조사에 나서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22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주민들로 구성된 원삼주민통합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용인SK반도체클러스터 산업단지 예정부지 일대의 등기부등본과 토지 거래내역을 직접 대조한 결과 30건의 LH 직원들의 투기 의심 사례가 확인됐다. 박지영 대책위원장은 “등기부등본 600여부를 직접 떼서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거래가 이뤄진 내용을 3주에 걸쳐 살펴봤다”며 “등기부등본상 이름은 LH 직원들과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있으니 수사 당국이 해당 의혹을 철저히 조사해서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지난 18일 용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공무원 대상 조사하는 것을 신뢰할 수 없어 직접 조사에 나섰다”며 “주민들의 의혹을 제대로 조사해서 파헤쳐 달라”고 용인시에 촉구하기도 했다. 당일 용인시는 “용인시, 용인도시공사 직원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산단과 인근 토지를 거래한 공무원이 6명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지방의회 등 지자체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공직사회에 대해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조사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이창엽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전주시가 5급 이상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재개발지역 토지거래 내역 전수조사를 한다고 밝혔으나 시민들의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불충분한 조사 범위”라며 “시민연대에서 공직자 재산 변동신고내역을 토대로 지방의원들의 부동산 소유현황과 거래내역을 자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시민단체에도 제보가 이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정부 합동조사단의 1차 조사결과가 발표된 직후 “시민들의 제보를 추가로 받아 조사한 결과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에서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매입한 사례 30건이 확인됐다”며 “불법적인 토지 취득에 대한 지자체의 감시·관리가 전반적으로 미비하고 이에 대한 처벌 또한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명·시흥 외 다른 3기 신도시 지역에서도 ‘땅 투기’ 관련 원주민들의 의혹이 증폭되는 분위기다. 과천 공공택지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3기 신도시 과천지구에서도 다수의 투기 의심 사례가 주민들 사이에 제기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아직 수사 당국에 정식으로 수사 의뢰를 하지는 않았으나 조사가 시작되면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는 주민들이 다수”라고 전했다.
땅 투기 조사 대상을 공직사회 전체로 확대하고 부동산 거래 내역 일체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요구도 잇따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광명·시흥뿐 아니라 3기 신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검찰 조사를 해 달라” “LH 직원들 및 국회의원 등 고위 공직자를 전수조사해 달라” 등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글이 다수 게시됐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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