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연료비 연동제’… 선거 눈치에 전기료 동결한 정부

입력 2021-03-23 00:08

2분기에는 인상될 것으로 예상됐던 전기요금이 동결됐다. 올해 도입된 ‘연료비 연동제’를 고려했을 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뒤집어졌다. 원칙대로라면 전력 생산 원가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유가·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상승한 만큼 전기요금도 올랐어야 하지만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전기요금을 인상했다가 유권자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는 인식 등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전기요금 인상 우려를 떨쳐낸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결정이다. 다만 정부가 스스로 정한 ‘원칙’을 임의로 파기했다는 비판만큼은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한국전력은 다음 달부터 6월까지 적용되는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한다고 22일 밝혔다. 1~3월과 마찬가지로 킬로와트시(㎾h)당 3원 인하한 단가를 적용하기로 했다. 4인 가구의 월평균 전력 사용량(350㎾h)을 기준으로 했을 때 1~3월과 마찬가지로 1050원 정도의 전기요금 인하 효과가 유지된다.

당초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증권가에서는 2분기 전기요금이 ㎾h당 2~3원 인상될 것으로 내다봤다. 연료비 연동제의 특성을 고려했다. 연료비 연동제란 전력 생산 원가에 영향이 큰 연료비의 등락에 따라 전기요금을 산정하는 제도다. 원가에 따라 판매비도 달라져야 한다는 비판에 지난해 12월 전기요금을 개편하면서 최초로 도입됐다. 도입 초기인 1분기만 해도 국제유가와 LNG 가격 모두 하락세여서 ㎾h당 3원을 인하할 수 있었다. 하지만 2분기는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에서 주로 쓰는 두바이유는 지난달 기준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서며 전년 동월(20.33달러)보다 3배 정도 상승했다. 이달 초 일본 거래 시장에서 유통된 LNG 가격은 코로나19 이전인 지난해 1월보다 6배 정도 급등했다. 이를 감안했을 때 전기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판세를 뒤집은 것은 정부다. 연료비 연동제 기준에 따른 분기별 전기요금 조정은 한전이 하지만 최종 인가 권한은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있다. 정부가 반대하면 요금을 바꿀 수 없는 구조다. 이번 결정에도 이 장치가 작동했다. 한전에 따르면 정부는 겨울철 이상 한파로 LNG 가격이 일시적으로 급등한 영향을 2분기에 반영하지 말자는 결정을 내렸다. 또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국민 생활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이유도 들었다. 앞서 김용범 기재부 2차관은 지난 19일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주재하며 “2분기 공공요금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공식적인 명분 외에 다른 이유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7일 서울시와 부산시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다음 달 1일부터 전기요금이 인상될 경우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기요금이 세금은 아니지만 일종의 조세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담은 결국 한전이 짊어지게 됐다. 다만 한전은 1분기 전기요금을 책정할 때 조정하지 않은 가격 인하분을 고려하면 연간 실적 악화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한전 관계자는 “1분기 연료비 인하분을 모두 반영했다면 ㎾h당 10.5원을 인하했어야 한다”며 “당시 ㎾h당 3원을 인하하면서 7.5원을 덜 내렸던 점을 고려하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권민지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