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만 문제 아니다”… 서구권 전반에 ‘아시아 증오 팬데믹’

입력 2021-03-23 04:03
미국 매사추세츠주 뉴턴에서 21일(현지시간) 증오범죄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린 가운데 아시아계 여성 주민들이 ‘아시아계 혐오를 멈춰라’ ‘아시아인들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등의 문구가 쓰인 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아시아계 6명이 희생된 미국 애틀랜타 총격 사건 이후 서구사회 전반에 오래전부터 퍼져 있던 반(反)아시아계 정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코로나19가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리며 서구권의 아시아 증오에 불을 붙였다는 분석이다.

CNN방송은 21일(현지시간)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호주 등 서구권 국가 전반에서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 보고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런던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6~9월 인종 또는 종교 등을 이유로 동아시아계에 가해진 증오범죄는 222건으로 2019년 같은 기간(113건) 대비 95% 늘었고, 2018년(105건)보다 배 이상 늘었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지난해 6월 영국 내 소수인종 12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중국계 4명 중 3명은 인종적으로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고 답했다.

영국 사우샘프턴대에서 강사로 일하는 펑왕은 지난 2월 동네에서 조깅하던 중 남성 4명에게 ‘중국 바이러스’라는 인종적 비방과 함께 얼굴 등을 폭행당했다고 CNN에 털어놨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중국계 호주인 104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37%는 최근 1년 사이 차별적 또는 비우호적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유럽의 경우 독일, 프랑스 등 상당수 국가가 홀로코스트 등 역사적 이유로 인종별 인구통계학적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지 아시아 인권 시민단체 등은 애초 극심했던 반아시아계 정서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욱 악화됐다는 입장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거주하는 중국인 만화 작가 콴 저우 우는 CNN에 “스페인 언론들은 애틀랜타 총격 사건을 1면에 다루지 않았다”며 “그것은 매우 사소한 뉴스이며, 우리(아시아계)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랑스 시민단체 ‘시큐리티 포 올’에 따르면 파리에서는 이미 2019년 이틀에 한 번꼴로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발생하는 등 반아시아계 정서가 퍼져 있다. 이 단체의 선 레이 탄 대변인은 “사람들이 대놓고 ‘나는 아시아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등 지난해부터 인종차별이 더 노골화됐다”고 말했다.

서구사회의 영향력 있는 정치인 중 일부는 반아시아계 정서에 기름을 부었다. ABC방송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3월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른 뒤 소셜미디어에서 해당 용어가 쓰인 해시태그 사용빈도는 83배나 늘었다. CNN은 “일부 서구권 정치인들은 지난해 코로나19와 중국의 연관성을 반복해 강조하고 반중국 발언을 늘렸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계와 남동아시아계가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늘었다”고 전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