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영국에 AZ백신 수출 차단… 현실이 된 ‘백신 전쟁’

입력 2021-03-23 04:04
로이터연합뉴스

팬데믹 초기부터 우려됐던 ‘백신 전쟁’이 현실화되고 있다. 백신 공급량 부족으로 유럽에서 접종 지연이 잇따르는 가운데 아스트라제네카(AZ)의 코로나19 백신을 두고 영국과 유럽연합(EU)의 갈등이 증폭되는 모양새다.

로이터통신은 21일(현지시간) EU가 네덜란드 공장에서 생산된 AZ 백신을 수출하라는 영국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EU의 한 고위 관계자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은 네덜란드 할릭스 공장에서 생산된 AZ 백신이 영국에도 수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레이던에 있는 이 공장은 하청업체가 운영하는 곳으로 AZ가 EU, 영국과 각각 계약을 맺은 백신의 공급처다.

마어리드 맥기네스 EU 집행위원회 위원도 “영국에 대한 백신 수출 금지 조치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EU 시민들은 백신 접종이 예상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되며 분노하고 있다”면서 “EU는 (수출을 막을) 준비가 완벽히 돼 있다”고 답했다.

이번 방침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지난 17일 영국에 백신 수출을 금지할 수 있다고 경고한 지 5일 만에 나왔다. 영국이 브렉시트로 인해 더 이상 EU 회원국이 아닌 만큼 EU 권역에서 생산된 백신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로 풀이된다.

영국은 강력히 반발했다. 벤 월러스 국방장관은 이날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EU 집행위원회의 태도를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면서 “백신 공급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EU의 국제적 평판이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법치를 존중하고 약속을 지키는 데 자부심을 가진 EU가 우리와의 백신 계약을 깬다면 그것은 EU에 큰 타격일 것”이라며 “백신 제조와 생산 과정은 유기적이어야 한다. 둘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EU를 향해 “비생산적인 행동”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등 감정섞인 발언을 내뱉었다.

EU가 당초 영국에 백신을 공급하기로 약속했으니 수출을 중단하면 계약 위반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EU가 백신을 권역 내에서만 사유화하는 ‘백신 민족주의’를 펴고 있다는 비난도 나왔다.

EU는 “우리는 이미 31개국에 코로나19 백신을 수출했다”면서 “백신 민족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건 100개 이상의 제약 원료에 대해 수출 금지령을 내린 영국”이라고 반박했다.

영국과 EU는 오는 25일 회담을 열고 백신 수출 관련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