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와의 조우가 추신수(39·SSG 랜더스)의 타격감을 끌어낸 것일까. 추신수가 30년 지기 동갑내기 이대호(39·롯데 자이언츠) 앞에서 국내 첫 출루·안타·득점을 신고했다. 이대호는 화답하듯 육중하게 바닥을 튄 타구로 타점을 뽑았다. 30년 전 초등학교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같은 꿈을 키웠고, 20년 전 엇갈린 프로 무대를 거쳐 이제 나란히 황혼기로 들어선 한국 야구의 두 ‘거목(巨木)’은 국내 실전 첫 맞대결에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추신수는 2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가진 2021시즌 프로야구 시범경기에 SSG 랜더스의 2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2타수 1안타 1볼넷 1득점을 기록했다. 타수를 제외한 모든 기록은 추신수의 ‘국내 1호’로 쌓였다. 시범경기는 정규리그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 차원에서 대진이 편성되고 기록이 남는 실전이다. 추신수는 전날 NC 다이노스를 상대한 첫 시범경기에서 2차례 삼진을 포함해 3타수 무안타로 부진했지만, 돌아온 고향 부산에서 선구안과 타격감을 끌어올렸다. 이대호는 추신수가 이날 휘두르지 못한 적시타로 ‘장군 멍군’ 승부를 만들었다.
추신수와 이대호에게 이날 승부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추신수와 이대호는 부산 수영초등학교에 재학했던 1991년부터 함께 야구를 해왔다. 롯데 선수였던 외삼촌 박정태를 보면서 ‘롯데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던 추신수가 먼저 야구를 시작했고, 3학년 때 급우였던 이대호를 야구부 감독에게 소개해 입단시킨 일화가 유명하다.
추신수는 부산중-부산고로, 이대호는 대동중-경남고로 각각 진학하면서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2001년, 추신수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해 미국으로 직행했고 이대호는 롯데에 입단하면서 서로의 프로 인생은 엇갈렸다. 추신수는 2005년에야 데뷔한 메이저리그에서 지난해까지 16년을 활약한 ‘빅리거’로, 이대호는 미국·일본 진출 기간을 제외하고 이적 없이 뛴 롯데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이대호가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2016년 추신수와 몇 차례 맞대결을 펼쳤다. 하지만 이듬해 롯데로 돌아오면서 승부는 1년짜리로 끝났고, 5년 만인 이날에야 재대결이 성사됐다.
추신수는 첫 타석인 1회초 1사에서 출루에 성공했다. 후속타자 최정의 2루타 때 3루까지 진루했고, 제이미 로맥의 중견수 희생플라이에서 홈을 밟아 득점했다. 2-2로 맞선 5회초 무사 1루에서 중견수 앞으로 떨어뜨린 타구로 첫 안타를 터뜨렸다.
롯데의 4번 타자로 나선 이대호도 밀리지 않았다. 0-2로 뒤처진 3회말 2사 1·2루에서 애매한 높이로 바닥을 튄 내야 안타로 2루 주자 안치홍을 홈으로 부르고 1루에 안착해 적시타를 쳤다.
이대호는 이때 대주자 김준태, 추신수는 네 번째 타석으로 돌아온 7회 2사에서 대타 고종욱과 각각 교체됐다. 경기는 롯데의 10대 3 완승으로 끝났다.
추신수와 이대호는 오는 4월 3일 개막하는 정규리그부터 우승을 경쟁하지만, 올여름에는 올림픽 금메달을 합작할 국가대표 동료가 될 수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이날 추신수와 이대호를 포함한 154명의 도쿄올림픽 대표팀 예비 명단을 발표했다. 대표팀은 오는 7월 전까지 24명으로 압축된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