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까지 이 작품 공연, 약속 지킬 수 있어 감사”

입력 2021-03-23 04:07
22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열린 연극 ‘해롤드와 모드(19 그리고 80)’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배우 박정자의 모습. 올해 그는 자신을 대표하는 이 공연에 마지막으로 출연한다. 작은 사진은 이번 공연의 포스터. 신시컴퍼니 제공

“올해 여든이 되었습니다. 한 명의 배우가 하나의 작품과 함께 늙어갔네요. 극 중 모드의 나이인 80세까지 이 공연을 하고 싶다고 다짐했는데,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처음 연극 무대에 올랐던 그 마음으로 제 마지막 ‘해롤드와 모드’를 만들어 보려 합니다.”

한국 연극계 거목인 박정자가 자신을 대표하는 ‘해롤드와 모드(19 그리고 80)’에 마지막으로 출연한다. ‘해롤드와 모드’는 자살을 꿈꾸는 19세 소년 해롤드가 유쾌한 80세 노인 모드를 만나면서 진정한 사랑을 배우는 과정을 그렸다. 2003년 모드를 처음 만난 박정자는 18년 동안 6번 이 무대에 섰다. 5번(2003·2004·2005·2008·2012·2015년)은 연극, 1번(2008년)은 뮤지컬이었다.


22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열린 연극 ‘해롤드와 모드’의 기자간담회에서 박정자는 “80세가 돼 무대에 서면 기분이 어떨까 싶었는데 전혀 다르지 않다”며 “80세가 됐다는 핑계를 대고 무대에 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롤드와 모드’는 1971년 미국에서 개봉한 동명의 영화가 원작이다. 시나리오를 쓴 작가 콜린 히긴스가 73년 직접 극본으로 각색해 연극으로 선보였으며, 2004년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87년 한국 초연에선 배우 김혜자가 모드로 출연했다. 이후 2003년 박정자가 배턴을 이어받으면서 작품을 대중적 반열에 올려놓았다. 해롤드 역을 거쳐 간 배우로는 김영민, 이종혁, 강하늘 등이 있다.

박정자는 62년 이화여대 연극반 시절 ‘페드라’로 데뷔한 후 한 해도 쉬지 않고 무대에 섰다. 그의 59년 연기 인생 중 약 3분의 1을 모드와 함께 했다. ‘80세가 넘어도 모드를 계속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모드의 나이인 80세에 떠나는 것이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나이가 들수록 욕심을 버리는 연습을 하게 됐다. 사뿐하게, 가볍게 모드를 내려놓고 싶다”고 말했다.

박정자는 이날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자신이 겪은 모든 시간과 사람, 그리고 스스로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80세가 되면 저도 모드처럼 성숙한 사람이 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여전히 철이 없어 부끄러울 때도 많아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달려왔는데, 그동안 참 감사한 일이 많았죠. 여전히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무대에 서 있는 것 그 자체로도 잘 살아온 인생이 아닐까 싶어요.”

올해 ‘해롤드와 모드’ 연출은 박정자와 함께 한국 연극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윤석화가 맡았다. 그는 박정자가 처음 무대에 섰던 2003년 제작에 참여했고 올해는 연출을 맡았다. 윤석화는 “박정자와 윤석화라는 동지가 만든 연극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하게 돼 영광”이라며 “연출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박정자의 마지막 모드를 함께 하고 싶어 결심했다”고 말했다. 5월 1일부터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