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한 번에… 동의보감 등 고문서가 한글로 번역

입력 2021-03-23 04:03
22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실감서재에서 도서관 관계자가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미래 정보 검색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뒤의 대형 화면으로 검색한 내용을 보내면 여러 명이 동시에 관련 자료를 검색해볼 수도 있다. 연합뉴스

종이로 된 커다란 흰 책장을 넘기니 조선 정조 때 간행된 종합무예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페이지가 양쪽으로 펼쳐진다. 한국 전통 무예를 그림으로 풀어 설명한 책답게 그림 속 두 명이 대련 자세를 취하고 있다. 원본 책이 그림으로만 이뤄진 데 비해 이 책 속 인물들은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인다. 또 한자로 된 내용 위에 ‘번역’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을 터치하니 한자가 한글로 바로 바뀌었다.

22일 국립중앙도서관 실감서재에서 공개된 ‘디지털북’은 책 모양으로 된 흰 종이 위에 고문서 내용을 재현하도록 첨단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빛으로 이뤄진 영상을 투사하는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적용해 평소 일반인이 접하기 힘들었던 무예도보통지, 동의보감(東醫寶鑑) 같은 국보급 자료를 살펴볼 수 있게 했다. 또 센서가 장착된 종이를 터치해 책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한글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실감서재는 관람객들이 첨단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형태의 도서관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상설 전시공간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9년부터 국립문화시설에 조성중인 실감형 콘텐츠 기반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까지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도서관 안에 시설을 조성해 23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디지털북’ 외에 조선시대 고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와 ‘목장지도(牧場地圖)’를 터치스크린 화면으로 현대화하는 작업도 이뤄졌다. 서울을 지도로 옮긴 수선전도 화면에서 관람객은 지도의 특정 지역을 터치하면 오늘날 일대 사진과 지명의 유래 같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목장지도에선 말을 터치할 경우엔 말의 명칭은 물론이고 세부 특징도 파악 가능했다.

과거 콘텐츠를 현대화하는 작업과 함께 미래 도서관을 그려볼 수 있는 기술도 실감서재에 구현했다. 미래형 정보 검색 체험 좌석을 마련해 컴퓨터로 했던 검색과는 다른 차원의 검색을 할 수 있게 했다. 이용자가 책상을 터치하면 연관돼있는 데이터가 같은 화면에 떠오른다. 연관 데이터를 따라가면서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숨어 있는 자료’까지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여러 명이 자료를 함께 찾을 수 있게 대형 화면으로 검색 결과를 옮길 수도 있다.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고종의 서재였던 ‘집옥재’처럼 특별한 공간에서 독서 체험을 할 수 있는 기술도 소개했다. 이밖에 국립중앙도서관 수장고의 현재와 미래 모습을 3차원 입체 영상으로 연출한 ‘수장고 체험’ 콘텐츠도 마련돼 있다.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은 “도서관이 혼자 공부하는 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쌓아온 지식 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함께 토론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지식 정보 창작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감서재 사전 예약신청은 22일부터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다. 사전 예약자는 23일부터 관람 가능하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