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의 ‘파워 데이’ 이후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그동안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석권에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자동차 업체들은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이 한국 배터리 업체와 거리를 두려는 건 배터리 내재화를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 중국 시장 공략 그리고 한국 업체간 배터리 소송전으로 인한 공급 불안정성 증가 등이 이유로 분석된다.
각형 배터리는 중국 CATL 등 중국 업체가 많이 채택하는 방식이다. 폭스바겐도 노스볼트와 합작사를 통해 각형 배터리를 만들 계획이다. 폭스바겐 전체 매출의 40%가 중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CATL 채택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각형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만드는 파우치형에 비해 생산 난이도가 낮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폭스바겐은 보급형 모델에서 최대 50%의 배터리 비용 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직접 생산하거나 저렴한 중국 업체를 통해 배터리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폭스바겐의 계획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나금융투자 송선재·김현수 애널리스트는 “노스볼트는 설립된 지 5년차 회사로 이제 생산을 시작했다”면서 “폭스바겐의 바람대로 기술 확보 및 생산성 향상이 가능할지는 아직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폭스바겐이 한국 배터리 업체에 이전같은 러브콜을 보낼 가능성이 낮다는 우려도 나온다. 폭스바겐은 파워 데이 개최 수주전에 한국 배터리 업체에 관련 내용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폭스바겐이 갑자기 한국 배터리 회사들의 플러그를 뽑아버렸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간의 배터리 소송전이 폭스바겐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정으로 폭스바겐이 SK이노베이션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배터리를 2년밖에 받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22일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폭스바겐이 수차례 합의를 제안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자 단단히 화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자동차 업체들도 폭스바겐과 같은 결정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에서 배터리가 핵심 부품이기 때문에 자동차 업체들이 협상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며 “파우치형은 한국 업체들이 하는데 자칫하면 파우치형 자체가 시장에서 도태될 위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