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의 침범을 받지 않은 나라 경제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법은 없다. 제도가 무너지면서 서서히 몰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자에 자주 회자되는 베네수엘라도 그렇다. 우고 차베스가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1999년이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그는 국민투표를 통해 의회와 사법부를 해산하고 새로운 헌법을 도입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과 그에 따른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렸다. 권력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킨 것이다.
이와 함께 차베스는 원유를 비롯한 주요 산업의 국유화, 부의 재분배, 부자들의 토지 수용 및 재분배를 통한 토지 개혁, 기업의 노동자 소유 및 자율 경영 도입 등의 포퓰리즘 정책을 추구했다. 많은 복지 수단을 단기적 목적으로 도입했으나 포퓰리즘이 성공을 거두자 임기 내내 지속했다. 식량, 주택, 의료, 교육을 무상으로 공급하기 시작했으며 그 재원은 매장량 세계 최고라는 원유 수출로 조달했다.
운 좋게도 세계 원유 가격은 차베스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상승해 2008년에는 배럴당 150달러 턱밑까지 올랐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지나치게 원유에 의존하고 있었다. 2000년 베네수엘라의 총소득 가운데 원유로부터 얻는 비중이 51%였으나 2006년에는 56%로 증가했다. 수출 가운데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도 1997년 77%에서 2006년 89%로 그리고 2012년에 96%까지 늘었다. 원유가 총소득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는 사이 원유 이외의 거의 모든 산업은 몰락해 가고 있었다. 생필품은 대부분 원유 수출로 얻은 외화를 이용해 해외로부터 수입했다. 그러나 2010년을 전후해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량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원유 가격 또한 하락하기 시작해 2015년에는 2008년의 반 토막이 났다.
차베스는 2013년 암으로 타계해 자신의 권력 집중과 포퓰리즘의 진정한 후과를 보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누렸다. 생필품 부족이 심화하고 30% 이상의 국민이 해외로 탈출했다. 원유 수출에 따른 재정 수입이 3분의 1로 감소하자 베네수엘라 정부는 화폐를 찍어 쓰기 시작했다. 당연히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공식 통계마저 발표를 중지했던 2018년 국제통화기금(IMF)은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율이 137만%라고 추정했다.
지난 20여년간 베네수엘라의 여정을 돌이켜보면 기시감 같은 것이 든다.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힘입어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 역정의 처음 절반과 매우 닮았다. 헌법 개정을 시도하다 실패한 것만 다를 뿐. 대한민국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누리는 것은 누구나 안다. 정권 이념에 동조하는 인사로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헌법재판관을 임명함으로써 이 나라의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이미 독립적 헌법기관이라 할 수 없는 무엇으로 변질되고 있다.
가관인 것은 국회다. 화가 나 있는 국민 앞에 선거를 앞두고 재난지원금이라는 것을 던진 것을 보면 전형적인 차베스 포퓰리즘이다. 국회 의석의 절대다수를 점유하는 여당이 하는 일이라고는 장기 집권을 위한 초석을 놓는 것 이외에 무엇이 있는가. 최근에는 돈을 찍어서 쓸 수 있게 한국은행법을 개정하는 법률안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포퓰리즘과 엮여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슬아슬하다. 의회와 행정, 사법을 독점했으니 절대 권력이다. 사심을 버리지 않을 때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하고 그 후과는 국민 몫이다. 멸사봉공은 힘 있을 때 해야 빛이 나는 법이다.
조장옥(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