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 하나가 여론조사 결과, 나아가 후보의 운명을 가른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보궐선거 후보등록 마감일(19일) 전 단일화 합의까지 파기하며 여론조사 설계를 놓고 대립한 이유다.
두 후보가 여론조사 문항·방법·시기를 놓고 21일까지 맞선 데는 여론조사 설계에 따라 이념성향·계층별 참여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 후보는 전통적 지지층인 보수·고연령층에서 강세이며 안 후보는 중도·저연령층에서의 외연 확장을 무기로 삼고 있다.
통상적으로 평일 낮 유선전화를 통한 여론조사는 직장인 응답률이 낮고 보수·고연령층 참여가 높다. 국민의힘이 전날까지 유선전화 비율 반영을 고수한 이유다. 반대로 여론조사 기간에 주말이 포함되면 직장인이 조사에 응하기 수월해진다. 이 때문에 국민의당은 21일 오후부터라도 여론조사를 즉각 실시할 것을 요구해왔다.
두 후보는 여론조사 문항을 놓고도 신경전을 벌였다. 정당 기반 지지층이 확고한 오 후보는 적합도, 외연 확장이 무기인 안 후보는 경쟁력 조사를 선호한다. 특정 지지정당이 있음에도 유권자들은 두 물음에 대한 답이 달라질 수 있는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입소스·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3개 여론조사기관이 SBS·KBS·MBC 의뢰로 20∼21일 서울 만 18세 이상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야권 단일후보 ‘적합도’ 조사에선 오 후보 34.4%, 안 후보 34.3%로 나타났다. ‘경쟁력’ 조사에서는 오 후보 39.0%, 안 후보 37.3%였다. 적합도와 경쟁력 모두 오차범위(표본오차 ±3.1%포인트) 내 접전이었다.
누가 단일후보가 되더라도 박영선 민주당 후보에겐 크게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오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박 후보는 30.4%, 오 후보는 47.0%로 나타났다. 안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박 후보는 29.9%, 안 후보는 45.9%를 득표할 것으로 예상됐다. 3자 구도로 치러질 경우 박 후보 27.3%, 오 후보 30.2%, 안 후보 24.0%로 나타났다(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적합도·경쟁력 문항을 놓고 벌어진 단일화 과정에서의 대립은 2002년 대선 때도 있었다. 적합도 조사를 내세운 노무현 후보와 경쟁력 조사를 고집한 정몽준 후보 간 신경전이 벌어졌고, 결국 ‘이회창 후보와 견줘 경쟁력 있는 단일후보로 노무현 정몽준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절충안이 선택됐다. 훗날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마지막 대목이 적합도에 가까웠다는 이유에서 노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또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단일화 과정에서 박영선·박원순 후보 측 협상 끝에 ‘누가 한나라당 후보에 맞설 야권 단일후보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문항이 채택됐다. ‘적합’이라는 문구는 들어갔지만 사실상 경쟁력 문항으로 설계된 셈이다. 결론은 여론조사에서 17.95% 포인트 차 압승을 거둔 박원순 후보의 승리였다.
전문가들은 현시점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후보 선출이 이른바 ‘정당정치 실종’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성수 한양대 교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정당을 통해 집단화를 이루고 이익을 표출하는 것이 정당 정치의 원리”라며 “여론조사 또는 인기몰이식 이합집산은 국민에게 정책선거와 정당 참여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공직 후보자를 뽑는데 당의 의견 대신 투표에 관심 없는 사람들의 의향까지 반영하는 것은 문제”라며 “정당의 대표성을 나타내지 못하고 역선택 우려도 있어 왜곡된 후보를 뽑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동우 이상헌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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