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문구 하나에 판 갈린다… “정당정치 실종” 우려도

입력 2021-03-22 00:05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21일 서울 홍대 앞 거리를 걷다 시민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왼쪽 사진).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가 재건축이 추진 중인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아파트를 찾아 조합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문구 하나가 여론조사 결과, 나아가 후보의 운명을 가른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보궐선거 후보등록 마감일(19일) 전 단일화 합의까지 파기하며 여론조사 설계를 놓고 대립한 이유다.

두 후보가 여론조사 문항·방법·시기를 놓고 21일까지 맞선 데는 여론조사 설계에 따라 이념성향·계층별 참여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 후보는 전통적 지지층인 보수·고연령층에서 강세이며 안 후보는 중도·저연령층에서의 외연 확장을 무기로 삼고 있다.

통상적으로 평일 낮 유선전화를 통한 여론조사는 직장인 응답률이 낮고 보수·고연령층 참여가 높다. 국민의힘이 전날까지 유선전화 비율 반영을 고수한 이유다. 반대로 여론조사 기간에 주말이 포함되면 직장인이 조사에 응하기 수월해진다. 이 때문에 국민의당은 21일 오후부터라도 여론조사를 즉각 실시할 것을 요구해왔다.

두 후보는 여론조사 문항을 놓고도 신경전을 벌였다. 정당 기반 지지층이 확고한 오 후보는 적합도, 외연 확장이 무기인 안 후보는 경쟁력 조사를 선호한다. 특정 지지정당이 있음에도 유권자들은 두 물음에 대한 답이 달라질 수 있는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입소스·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3개 여론조사기관이 SBS·KBS·MBC 의뢰로 20∼21일 서울 만 18세 이상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야권 단일후보 ‘적합도’ 조사에선 오 후보 34.4%, 안 후보 34.3%로 나타났다. ‘경쟁력’ 조사에서는 오 후보 39.0%, 안 후보 37.3%였다. 적합도와 경쟁력 모두 오차범위(표본오차 ±3.1%포인트) 내 접전이었다.

누가 단일후보가 되더라도 박영선 민주당 후보에겐 크게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오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박 후보는 30.4%, 오 후보는 47.0%로 나타났다. 안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박 후보는 29.9%, 안 후보는 45.9%를 득표할 것으로 예상됐다. 3자 구도로 치러질 경우 박 후보 27.3%, 오 후보 30.2%, 안 후보 24.0%로 나타났다(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적합도·경쟁력 문항을 놓고 벌어진 단일화 과정에서의 대립은 2002년 대선 때도 있었다. 적합도 조사를 내세운 노무현 후보와 경쟁력 조사를 고집한 정몽준 후보 간 신경전이 벌어졌고, 결국 ‘이회창 후보와 견줘 경쟁력 있는 단일후보로 노무현 정몽준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절충안이 선택됐다. 훗날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마지막 대목이 적합도에 가까웠다는 이유에서 노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또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단일화 과정에서 박영선·박원순 후보 측 협상 끝에 ‘누가 한나라당 후보에 맞설 야권 단일후보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문항이 채택됐다. ‘적합’이라는 문구는 들어갔지만 사실상 경쟁력 문항으로 설계된 셈이다. 결론은 여론조사에서 17.95% 포인트 차 압승을 거둔 박원순 후보의 승리였다.

전문가들은 현시점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후보 선출이 이른바 ‘정당정치 실종’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성수 한양대 교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정당을 통해 집단화를 이루고 이익을 표출하는 것이 정당 정치의 원리”라며 “여론조사 또는 인기몰이식 이합집산은 국민에게 정책선거와 정당 참여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공직 후보자를 뽑는데 당의 의견 대신 투표에 관심 없는 사람들의 의향까지 반영하는 것은 문제”라며 “정당의 대표성을 나타내지 못하고 역선택 우려도 있어 왜곡된 후보를 뽑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동우 이상헌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