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서 쪽잠자며 아들 학비 벌어” “실직 때도 이웃 돕던 사람”

입력 2021-03-22 04:03
한 시민이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총격 참사 현장 중 한 곳인 ‘골드 스파’ 주변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아 19일(현지시간) 무릎을 꿇은 채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스파에서 일하다가 총격을 받아 숨진 한인 여성 유모(63)씨는 마사지 치료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일자리를 잃었다가 ‘아로마세라피 스파’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자 너무 기뻐했다고 유씨의 두 아들이 애틀랜타 지역 언론 ‘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튜션(AJC)’에 말했다.

유씨의 장남 엘리엇 패터슨(42)씨는 어머니에 대해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음식과 선물, 꽃을 주고 집세가 없는 사람들에겐 약간의 현금을 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의 희생자 중 한 명인 한인 여성 그랜트씨와 두 아들. 고펀드미 캡처

유씨는 미군이었던 남편을 만나 1980년대 조지아주로 이주했다. 차남인 로버트 패터슨(38)씨는 AJC에 “우리 어머니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그녀는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지역주민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수사 당국은 애틀랜타의 마사지·스파 업소들에서 지난 16일(현지시간) 발생한 연쇄 총격 사건으로 숨진 한인 여성 4명의 신원을 공개했다. 유씨를 포함해 박모(74)씨, 김모(69)씨, 미국 성(姓) ‘그랜트’를 가진 51세 여성이었다. 그랜트씨는 한국 국적을 보유한 영주권자이고, 나머지 3명은 미국 국적인 시민권자로 추정된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랜트씨의 사연을 19일 보도했다. 두 아들의 대학 등록금과 집세, 갖가지 공과금을 감당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해야 했던 ‘싱글 맘’이었다. 둘째 아들 에릭 박(20)씨는 “어머니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면서 한국 음식점에서 함께 먹은 순두부찌개와 어머니가 만들어준 김치찌개를 떠올렸다.

그랜트씨는 차가 없는 데다 통근 거리가 멀어 직장이었던 ‘골드 스파’나 직장 인근 친구 집에서 묵는 날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그랜트씨는 일이 끝나면 매일 두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총격 사고 전날인 15일 저녁 나눴던 통화가 마지막이 됐다. 어머니를 잃은 큰아들 랜디 박(22)씨는 동생과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며 온라인 모금펀드 ‘고펀드미’에 계정을 개설했고, 21일 오전까지 약 265만5000달러(약 30억원)를 모금했다.

이번 총격 사고로 숨진 피해자는 모두 8명이다. 이 중 한인 여성은 4명이었고, 다른 아시아계 여성 2명도 사망했다. 백인 여성과 남성도 각각 1명씩 숨졌다.

중국 출신 여성 탄 샤오제씨는 애틀랜타 교외에서 ‘영스 아시안 마사지’라는 가게를 운영하다가 숨졌다. 탄씨의 친구 애슐리 장은 NYT에 “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했다”면서 “우리는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마사지 가게 종업원이던 아시아계 여성 다오위 펑(44)씨도 근무한 지 수개월 만에 총탄에 맞아 변을 당했다. 마사지 가게 고객인 백인 여성 딜레이나 애슐리 욘(33)씨는 남편과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가 목숨을 잃었다. 디트로이트에서 일자리를 찾아 건너온 폴 안드레 미컬스(54)씨는 전기 기술자로 이번 사건의 유일한 백인 남성 희생자다.

과테말라 출신 이민자인 엘시아스 에르난데스-오르티스(30)씨는 고향의 가족에게 송금하기 위해 스파 바로 옆에 있는 환전소를 찾았다가 총격을 받고 중태에 빠졌다.

NYT는 “희생자들과 피해자는 한국에서, 중국에서, 과테말라에서, 그리고 디트로이트에서 왔다”면서 “그들은 자녀와 심지어 손주들을 위해 돈을 벌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