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세이브 시스템’ 3시간 내 진료·치료 일사천리

입력 2021-03-22 21:00 수정 2021-03-23 11:00
일산병원 특화된 프로그램 가동… ‘하이브리드 수술실’서 종합 처치
협력병원과는 24시간 핫라인… 노인암클리닉은 맞춤치료 제공
여러 과 다니거나 장시간 대기 없애… 치료에서 돌봄까지 종합적 관리

심뇌혈관계 질환의 진단과 치료가 한 공간에서 가능한 첨단 하이브리드 수술실의 모습.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제공

#1. 경기도 고양에 사는 A씨(38·여)는 6개월 전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인근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응급실은 대개 몰려드는 환자들로 검사나 처치를 받으려면 몇 시간씩 기다리기 일쑤다. 하지만 A씨는 도착하자마자 병원의 ‘뇌졸중 세이브(save) 프로그램’ 적용을 받았다. 다른 질환자보다 우선적으로 CT검사를 받았고 ‘뇌지주막하출혈(예후가 나쁜 뇌출혈의 일종)’이 의심돼 곧바로 ‘하이브리드 수술실’로 옮겨졌다. 진단과 치료(시술 및 수술)를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첨단시설이다. A씨는 X선으로 뇌혈관 내 병변을 들여다보는 뇌혈관조영술을 받았고, 그 상태에서 바로 전신마취에 들어가 파열된 혈관을 막는 ‘코일색전술’을 받았다. 응급실 도착에서 처치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뇌졸중의 골든 타임은 증상 발생 후 짧게는 2~3시간, 길어도 4~5시간 이내여야 한다. 한쪽 마비나 의식소실 등 증상이 생기면 119를 통해 가까운 병원에 최대한 빨리 닿고 적절한 처치를 받아야 생명을 잃지 않거나 뇌손상에 따른 후유장애를 최소화할 수 있다. A씨는 현재 신경학적 결손 없이 건강을 회복했고 정상생활을 하고 있다.

#2. 한 달 전 혈액암 일종인 ‘거대B세포 림프종’을 진단받은 B씨(84)는 막상 항암치료를 시작하려니 망설여졌다. 고령인 점이 부담된 것. 주변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면 무조건 죽는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자식이나 아내가 병 간호를 해 줄 여력이 안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일산병원에 노인암클리닉이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찾았다. 기본 건강상태 검사와 상담이 우선적으로 이뤄졌고 나이에 맞게 항암제 용량을 조정하며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또 잘 몰랐던 암 산정특례제(5% 본인부담)나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한 안내와 신청까지 진행해 줬고 항암치료 기간에는 요양보호사가 찾아와 신체나 가사 활동을 도왔다. 폐렴으로 입원했을 땐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통해 가족 없이 간호사의 간병과 보살핌을 받았다. 6번의 힘겨운 항암치료를 마치고 지금은 완전관해(암세포 사라짐)돼 정기 추적관찰을 받고 있다.

A씨와 B씨가 경험한 진료 서비스는 건강보험 일산병원이 도입한 특화 프로그램이다. 국내 사망 원인 2위인 심뇌혈관질환의 체계적 진료를 위해 병원은 2019년 12월 심뇌혈관질환센터를 개소했다. 신경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심장내과 내분비내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여러 과들이 팀을 나눠 유기적으로 협업한다.

골든 타임 확보가 중요한 뇌졸중, 심근경색 환자에 대해 진료부터 검사까지 당일 가능하고 고위험 ‘다혈관질환’이 의심되면 시술 및 처치가 ‘패스트 트랙(fast track)’으로 진행된다. 특히 앞서 도입된 하이브리드 수술실의 경우 ‘중재 시술(약물 투여 및 혈관 조영)’과 외과 수술을 한 공간에서 실시할 수 있어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다. 환자 입장에서도 다른 검사나 처치를 위해 자리를 옮길 필요가 없어 편의성과 안전성이 크다.

양국희 심뇌혈관질환센터장은 22일 “심뇌혈관질환은 시간을 다투는 초응급질환이다. 특히 뇌졸중 세이브 시스템을 활성화하면 3시간 안에 원스톱으로 진료와 치료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지역 내 협력 병원과 24시간 ‘핫라인’도 운영하고 있다. 양 센터장은 “24시간 전문 진료팀을 통해 인근 어디서든 적정 시간 내 진료가 가능하도록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전담 코디네이터를 통해 심뇌혈관질환 2차 예방을 위한 위험 인자 관리와 교육, 퇴원 환자에 대한 투약, 일상생활 관리(재활치료 연계)도 병행한다. 2018년 6월 심혈관질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심장재활프로그램은 특히 주목받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노인암클리닉 허자윤 교수가 여성 암환자와 치료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제공

노인암클리닉은 일산병원이 2019년 11월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노인 특성을 감안한 맞춤형 암 치료 제공이 목적이다. 노인 암환자들은 당뇨, 고혈압, 심부전, 골다공증 등 여러 만성질환과 합병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종합적인 치료 접근이 필요하다. 또 암 치료에 만성질환 치료까지 진행하려면 한 번 병원에 갈 때마다 여러 과를 돌아다니며 오랜 시간 대기하는 등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이 클리닉 허자윤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노년기 암 환자의 신체·인지능력, 정서, 일상생활, 퇴행성질환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생활습관 관리, 영양상담, 재활치료, 호스피스완화의료 등 상황에 맞는 항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노년기 암환자들은 치료 이후 돌봄 영역도 중요하다.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이나 가정간호시스템 등을 받도록 연계하고 환자의 의지를 충분히 숙지한 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돕기도 한다. 허 교수는 “의료에는 ‘치료와 돌봄(cure&care)’의 영역이 있다. 노년기에는 치료보다 돌봄이 필요할 때가 많다. 완치에 최선을 다하지만 사는 날까지 편안하게 보내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노년기 암 치료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일산병원은 이밖에도 민간병원이 수익성 등을 이유로 기피하거나 지역사회에서 무관심한 틈새 분야 진료에 집중하고 있다. 신부전 등 혈액투석 환자를 위한 투석혈관클리닉을 운영 중이며 지난해 3월엔 외상팀을 별도로 꾸려 지역 중증 외상 환자의 30분 내 진료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올 상반기엔 고관절, 무릎, 척추 등 노인 정형외과질환 수술을 위한 첨단 로봇수술지원센터도 구축할 예정이다.

일산병원은 고양과 파주 등 경기 북부권 뿐 아니라 인천과 서울 은평구 등의 원거리 지역 환자들도 많이 찾고 있다. 국내 유일 보험자병원인 관계로 의료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데다 2차의료기관임에도 의료 서비스의 질과 의료진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과의 인력 협약으로 교수는 물론 전공의까지 수준 높은 의료진 확보가 언제나 가능하다. 또 불필요한 비급여 의료를 하지 않아 비슷한 규모의 다른 병원보다 비용이 덜 든다.

박종운 진료기획실장은 “대형 민간병원처럼 최고의 의료 제공을 추구하지만 보험자병원이 지향하는 ‘적정 의료’를 지켜 공공의료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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