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상황에서 소득 양극화만큼 계층 간 지출 격차도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가계지출 규모로 봤을 때 저소득층의 지출은 코로나19 사태 전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고소득층은 반대로 지출을 선제적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가계 지출 중 식음료 부분 지출 비중도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의 2배 가까이 됐다.
21일 통계청의 ‘2020년 4/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고소득층인 5분위는 전년 동기 대비 오락·문화(-30.4%), 교육(-16.8%), 음식·숙박(-12.0%) 등에서 다른 소득분위에 비해 지출을 대폭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저소득층인 1분위의 오락·문화(6.2%) 지출은 지난해 4분기보다 오히려 늘었고 교육비 지출(-2.6%)도 5분위에 비해 감소폭이 훨씬 적다.
유경원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21일 “취약계층은 소득이 감소할 경우 상대적으로 소비여력 자체가 부족해 소비지출을 조정할 여지가 크지 않았지만, 소득안정계층은 소득이 감소하더라도 소비지출을 더 크게 줄여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추가적인 위기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4분기 흑자액(처분가능소득-소비지출)을 보면 1분위는 24만4000원으로 전년 대비 0.4%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5분위는 338만3000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6.1% 증가했다.
전체 가계 지출에서 필수 지출 항목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소득분위별로 2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 비중이 1분위에서는 23.4%지만, 5분위에서는 13.1%로 약 절반 수준에 그쳤다. 마찬가지로 주거·수도·광열 비용 지출도 1분위는 14.8%인 반면, 5분위는 8.4%에 불과했다.
이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의·식·주’ 중 ‘식·주’가 전체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지어 볼 수 있다. 가계의 소비심리가 위축되면 불필요한 소비부터 줄이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생존과 관련된 ‘식·주’는 저소득층에서 더욱 줄이기 어려운 탓이다. 실제 지난해 4분기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과 주거·수도·광열 지출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6.9%, 5.5% 상승했다. 반면 대표적으로 ‘삶의 질’과 관련되는 항목이라고 볼 수 있는 오락·문화, 외식·숙박 지출은 각각 18.7%, 11.3% 감소했다.
특히 최근 식료품 물가의 상승, 전월세 비용 상승 등이 겹치면서 저소득층의 부담은 더욱 가중됐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소비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하는 엥겔계수는 2019년 11.4%에서 지난해 12.9%로 1.5% 포인트가 증가했는데, 이는 2000년 13.3% 이후 20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임대료 및 수도광열 지출 비중을 뜻하는 슈바베계수도 2019년 17.6%에서 지난해 18.7%로 1.1% 포인트가 증가, 2006년 18.8% 이후 가장 높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