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동산에 속았지만 잘 샀다”… 못 말리는 한탕 꿈

입력 2021-03-22 00:04 수정 2021-03-22 09:58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부동산 광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 판결문 속에서 투기꾼들은 한결같이 “공개된 정보였다. 차익은 없었다”고 변명했고, 심지어 기획부동산에 속아 땅을 산 이들조차 땅값 상승을 기대하며 대박의 꿈을 놓지 못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공인중개소 밀집 지역. 연합뉴스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공분을 불러일으키면서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기획부동산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사기로 결론이 난 기획부동산 사건에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고, ‘속아서 샀다’고 피해를 호소하던 피해자들마저 차익실현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이중적인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2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수원지법 평택지원 김봉준 판사는 지난 1월 기획부동산업자 2명에 대해 사기 혐의로 각각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2018년 경기도 평택 등에서 “인천에 좋은 필지들이 매물로 나왔다. 국토교통부 3기 계양신도시에 포함돼 있고 국가 주도로 5배 이상 보상이 이뤄진다”는 거짓말로 피해자들을 속여 금원을 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업자들이 추천한 필지들은 개발제한구역에 환경평가등급 1~2등급에 해당해 신도시 계획에 빠진 곳이었다. 두 사람은 이런 수법으로 9억4100여만원을 빼돌렸다. 김예림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기획부동산 사기의 경우 범행 주체가 유령 회사인 경우가 많아 처벌도 어렵지만 재판이 열려도 적용되는 형량이 낮다”며 “특정 수법으로 범행을 한 경우 형량을 가중하는 방식 등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원은 사기행각을 벌인 기획부동산 업자뿐만 아니라 차익을 기대하며 기획부동산에 참여한 피해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광주지법 형사1부(부장판사 박현)는 지난해 6월 수도권 고속도로나 대규모 물류단지 예정지 인근의 가치가 떨어지는 땅을 매입한 뒤 전화상담원을 고용해 시가 대비 4배 이상 부풀린 가격에 토지 지분을 판매한 기획부동산 업자 3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전화상담원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며 판매를 독려하는가 하면, 계약 체결 전까지 매수자들에게 토지 지번을 알려주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징역 1년6개월~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피해자들이 투자 이익을 취하기 위해 특별한 의심 없이 피고인들의 설명을 받아들이고 주변인들에게 전달해 피해가 확대됐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피해자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피해자들은 재판 진행과정에서 모순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50여명에게 6억4000여만원 상당의 피해를 입힌 기획부동산 업자들은 “매매대금을 돌려줘 피해를 보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일부 피해자들은 토지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재판 진행 중에 땅값이 일부 상승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토지를 그대로 갖고자 했다는 것은 ‘속아서 샀지만 사길 잘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 “여전히 차익실현에 대한 기대가 식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윤태 임송수 기자 truly@kmib.co.kr